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사법개혁 5대 의제’와 관련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국 법원장들에게 알리고 의견 수렴 절차에 착수했다. 대법원은 사법제도의 근간을 바꿀 수 있는 중대한 논의가 국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전국 법원장 의견을 모아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법원 내부망(코트넷) 법원장 커뮤니티에 ‘사법개혁 논의와 관련해 드리는 말씀’이라는 글을 올려, 대법원이 민주당 ‘국민중심 사법개혁 특별위원회’(특위)에 제출한 의견을 공유했다. 천 처장은 “이번 입법 추진은 과거 사법개혁 논의와 달리 사법부의 공식 참여 없이 신속히 진행되고 있다”며 “여러 차례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절차적 보완 없이 비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각 법원장들께서 소속 법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달라”며 “이를 토대로 전국 법원장 회의 개최를 검토해 사법개혁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가장 우려하는 사안은 대법관 수 증원안이다. 민주당 특위는 사건 적체 해소를 명분으로 대법관 수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법원행정처는 “과도한 증원은 재판연구관 인력 등 대규모 사법자원의 대법원 집중을 초래해 사실심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예산과 시설 등 현실적 제약을 고려할 때 증원안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천 처장은 “하급심 인력과 자원이 빠져나가면 오히려 전체 재판의 속도와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법관평가위원회 중심의 평가제도 개편도 쟁점이다. 개편안은 외부 인사를 포함한 평가위원회가 법관을 평가하는 방식을 검토 중인데, 법원행정처는 이를 사실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천 처장은 “외부 평가와 인사 개입을 통해 법관의 인적 독립과 재판의 독립이 흔들릴 수 있다”며 “사법의 근간을 해칠 수 있는 제도 변화는 법관 사회에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에 대해서는 원칙적 찬성 입장을 내놨지만, 미확정 형사판결의 경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천 처장은 “국민의 사법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확정되지 않은 형사판결을 공개할 경우 무죄추정 원칙이나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될 수 있다”며 “입법 과정에서 보완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조만간 전국 법원장 회의 개최를 검토하며, 사법개혁 관련 현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천 처장은 “각 법원장께서는 소속 법관들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주길 부탁드린다”며 “사법개혁 논의가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도록 법관사회의 목소리를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