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다. 다음 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릴 전승절 8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뿐만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북중 관계 회복의 신호탄이자,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주변국에 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는 김 위원장이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고 28일 밝혔다. 훙레이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가 발표한 참석 정상 명단은 총 26명으로, 푸틴 대통령에 이어 김 위원장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탈냉전 이후 처음이다. 훙 부장조리는 “중조(북중)의 전통적 우호를 잘 지키고 공고히 하며 발전시키는 것은 중국 당정의 굳은 입장”이라며 “조선과 교류·협력을 계속 강화하면서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할 용의가 있고 긴밀히 협조해 중조 우호의 새로운 장을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김 동지께서 시진핑 동지의 초청에 따라 곧 중국을 방문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우리 외교부는 “전승절 행사와 관련해 한중 간 소통을 지속해왔으며, 관계기관의 정보를 통해 인지하고 있었다”며 “북중 관계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길 기대하며 우리는 남북 간 대화와 협력에 열려 있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우리 쪽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참석한다.
김 위원장의 방중 및 시 주석과의 면담은 6년 만이다. 김 위원장은 2018년 3월 첫 방중한 후 같은 해 두 차례 더 방중했고, 2019년에도 한 차례 중국을 찾았다. 같은 해 6월에는 시 주석이 평양을 찾아 회담했으나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서 두 정상 간 만남은 없었다.
북한 지도자들은 복수 국가 정상이 모이는 다자외교 행사 참석을 꺼려왔다. 김 위원장의 다자 무대 등장은 이번이 최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소원해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북중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북한은 올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행사, 내년 노동당 9차 대회 등을 앞두고 있으며 이를 성대하게 치르려면 중국의 원조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올해 개장한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에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도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간 러시아를 통해 군사·경제적 이득을 얻어온 북한이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입장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 부소장은 “지금까지 ‘특수’가 사라지기 때문에 북중 관계 복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한미와 주변국에 대한 일종의 ‘포고’로도 해석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전격적인 방중은 김 위원장이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승부수”라며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라고 말했다. 한미 신정부 출범 후 대북 정책 기조 및 한일·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언급, 우리 정부의 안미경중 노선 폐기 등까지 종합적으로 염두에 두고 앞으로 북한 입장을 보다 쉽게 관철시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이 북미 대화 재개의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또 김정은 위원장도 2018·2019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방문했었다.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자처한 우리 정부의 전략에도 이목이 쏠린다. 우리 정부는 올 10월 3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을 초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그에 앞서 남북 연락채널 복원 등의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