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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과 원망, 내면의 상처가 예술이 되다…루이즈 부르주아展

■'덧없이 영원한' 용인 호암미술관서 30일 개막

25년만에 국내 최대규모 회고전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양가감정

다양한 장르 넘나들며 작품으로

초기~말년 아우르는 106점 공개

일기·작업 노트 등 기록물도 배치

텍스트 통해 작가 내면 이해 도와

루이즈 부르주아, 마망(1999)/제공=호암미술관




지금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을 찾는 대부분 관람객이 가장 먼저 마주할 가능성이 높은 작품은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의 '마망(엄마)'이다. 높이만 9m에 달하는 이 거대한 청동 거미 조각은 미술관 진입로 부근 수변 정원에서 날카로운 존재감을 과시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2021년부터 호암미술관을 지켜온 마망은 특별한 순간을 앞두고 있다. 바로 부르주아의 대규모 회고전이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를 세계적인 예술가 반열에 올린 대표작 '마망'을 소장한 국내 유일한 기관인 호암미술관에서 그녀의 70여년 창작 여정을 총망라하는 전시가 펼쳐지는 것은 필연이다. 푸른 하늘 아래 자리 잡은 마망은 당분간 부르주아의 내밀한 작품 세계로 관람객을 안내하는 문지기 역할을 맡게됐다.

루이즈 부르주아 /제공=호암미술관ⓒ사진 낸다 랜프랭코


국내 최대 규모로 25년 만에 열리는 부르주아의 미술관 회고전 '덧없이 영원한'이 30일 호암미술관에서 막을 올린다. 1940년대 초기 회화부터 말년의 패브릭 작업까지, 70여년에 걸친 작가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106점이 모였다. 부르주아의 아시아 순회 전시의 일환으로 호주 시드니에서 시작해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과 대만 타이페이 푸본미술관 등을 거쳤고 호암미술관이 대미를 장식한다.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은 물론 삼성문화재단 소장품 13점과 개인 소장품 등을 포함해 한국만의 특별함을 더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부르주아는 개인적 트라우마와 보편적 인간 감정을 오가는 작품으로 20세기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다. 조각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그저 조각가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설치와 퍼포먼스, 드로잉, 회화,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90세까지 작업을 멈추지 않은 이 불굴의 예술가는 지워지지 않는 내면의 고통마저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자신의 생애마저 예술로 완성했다.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 루이즈 부르주아의 '웅크린 거미(2003)'와 그의 퍼포먼스 영상이 함께 전시돼 있다. 영상 속 퍼포머는 "어머니가 나를 버렸다"고 절규하듯 노래한다. /김경미기자


루이즈 부르주아의 ‘의식과 무의식(왼쪽)’과'구름과 동굴'이 함께 설치된 전시 전경 / 김경미기자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부르주아의 사적 기억과 서사를 이해할 때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일례로 대표작 '마망'은 태피스트리 직인이었던 자신의 어머니 조제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품은 작품이다. 그의 어머니는 거미가 거미줄을 짜듯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가족을 보듬었지만, 동시에 부르주아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 중 하나로 청동 조각 '웅크린 거미' 뒤로 영상 퍼포머스가 펼쳐지는 장소를 꼽을 수 있는데, 영상 속 퍼포머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채 "엄마가 나를 버렸다"고 절규하듯 노래한다. 부르주아의 어머니는 그녀가 21살일 때 질병으로 숨을 거뒀다. 작가는 어머니를 무척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을 너무 빨리 떠나버린 것을 원망했다. 이 같은 양가 감정과 지울수 없는 내면의 상처가 부르주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2017 /제공=호암미술관,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SACK, Korea




꽃(Les Fleurs), 2009 /제공=삼성문화재단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SACK, Korea


루이스 부르주아의 '히스테리아의 아치(1993)' 뒤로 부르주아의 텍스트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제니 홀저의 라이트 프로젝션이 상영되고 있다. /김경미기자


아버지 루이에 대한 애증은 좀더 폭력적이고 강렬하게 드러난다. 유년시기 부르주아는 자신의 가정교사와 10년간 불륜을 저지르는 아버지를 목격하며 배신감과 함께 버림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경험한다. 어머니의 그림자가 바느질과 이어붙이기로 남았다면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절단과 조각내기다. 전시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상상적 복수를 무대로 연출한 설치작 '아버지의 파괴'와 가정 내 은밀한 기억을 시각화한 '붉은 방(부모)'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부르주아의 텍스트에 대한 가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생애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글을 쓴 훌륭한 문장가로도 평가받는다. 작가의 일기부터 꿈 기록, 작업 노트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물에서 발췌한 그의 언어들이 공간 곳곳에 배치돼 부르주아의 내면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전시는 내년 1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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