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직위해제됐다. 이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생 20주년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재난 대비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는 서한을 전날 의회에 보냈다. 공무원들의 대화 요구에 정부의 입장을 밝히긴커녕 보복성 인사 조치로 대응한 셈이다.
26일(현지 시간) NYT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재난 대비 정책을 비판하는 서한을 작성한 FEMA 전현직 지원 182명 가운데 실명을 밝힌 36명은 이날 밤 이메일로 직위해제(유급 대기발령) 통보를 받았다. 이메일에는 직위해제 조치가 즉각 발효되며 추가 통보가 있을 때까지 유지된다고 적혀 있었다. 이유는 설명돼 있지 않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과학기술 분야 정책에 반대하며 이번 서한의 홍보를 도운 비영리단체 '스탠드업포사이언스'의 콜레트 델러왈라 대표는 이번 인사조치가 보복조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도 또다시 우리는 연방정부가 내부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우리 공무원들에게 보복하는 것을 보고 있다"며 "이는 불법일뿐만 아니라 우리 중 가장 헌신적인 사람들에 대한 깊은 배신"이라고 평가했다.
서한 발송자들은 20년 전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생 20주년을 앞두고 FEMA의 재난 대응 역량이 붕괴할 위기이며 당시와 같은 인재(人災)가 재발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이들은 올해만 FEMA의 풀타임 근무 직원 3분의 1이 떠났다며 "정치적 동기에 따른 해고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FEMA 폐지 방침을 세우고 전문성과 권위가 없는 인사들을 고위직에 임명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예산과 인력도 대폭 줄었다.
지난달 텍사스주에서 발생한홍수에 대해서도 긴급 재난 대응이 어려웠다고 비판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DHS) 장관이 10만 달러(약 1억 3900만 원) 이상의 지출은 장관의 직접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지시를 내린 탓이다. 서한 발송자들은 올해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취임 이래 임명된 캐머런 해밀턴 전 청장 직무대행과 데이비드 리처드슨 현 FEMA 청장 직무대행 모두 재난 관리 경험이 전무한 인사이며 법률상 자격요건에도 어긋난다고도 강조했다. 카트리나 사태를 계기로 입법된 재난관리 개혁법에는 FEMA 청장은 "재난 관리에 대한 능력과 지식이 입증된" 인물이어야만 하며 DHS 장관이 FEMA의 권한·책임·기능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이와 함께 놈 DHS 장관이 FEMA의 업무에 간섭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법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서한 발송자들은 FEMA를 DHS에서 독립된 내각급 행정기관으로 격상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그러면서 "(이런 변화들이) 제때 이뤄져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같은 국가적 재난을 예방하고, FEMA 자체가 사실상 해체되는 일을 방지하고, 국민들을 저버리는 일을 막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허리케인 철이 지난 후에 FEMA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관련 업무를 각 주로 넘기겠다는 계획을 지난 6월 밝힌 바 있다. 또 정부지출 감축의 일환으로 미국 전역의 지역별 재난 대비 인프라 구축과 유지에 쓰이는 수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삭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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