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인간의 ‘가속 노화’를 앞당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 영향력은 흡연, 음주, 불량한 식습관, 운동 부족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현지시간) 홍콩대 건축학부 도시계획학과 궈추이 조교수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폭염이 가속 노화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2008~2022년 대만 성인 2만4922명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했다. 혈압, 염증 수치, 콜레스테롤, 폐·간·신장 기능 등을 종합해 산출한 ‘생물학적 나이’를 기준으로, 폭염 노출과 노화 속도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것이다. 연령, 성별, 생활습관, 체질량지수(BMI), 기존 질환, 직업, 방문 계절, 거주 지역의 에어컨 설치 대수 등 변수를 통제해 결과를 도출했다.
분석 결과, 폭염에 노출된 누적 기간이 통계 지표인 사분범위(IQR)만큼 늘어날 경우 생물학적 나이는 평균 0.023∼0.031년(약 8∼11일)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육체노동자, 농촌 거주자,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지역 주민일수록 폭염에 따른 가속 노화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결과를 “2년간 폭염에 노출되면 신체 나이가 8~12일 더해질 수 있다”고 해석했으며,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은 “2년간 폭염 노출 기간이 단 4일 늘어난 사람의 신체 나이가 약 9일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책임자인 궈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영향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폭염은 수십 년간 반복돼온 만큼 누적 효과가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폭염이 더 잦아지고 길어지면서 건강에 미칠 파급력이 훨씬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경보건학자 폴 벡스 호주 매쿼리대 교수는 같은 학술지에 실린 해설 논평에서 “폭염을 잘 견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노화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번 연구가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어린 시절 열에 노출될 경우 뇌 백질(white matter) 발달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지난해 발표된 데 이어, 성인 역시 폭염으로 가속 노화를 겪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국내 올해 온열질환자는 4000명을 넘어 작년보다 1.3배 늘었고, 50~60대와 야외 근로자에게서 많이 발생했다. 주요 발생 장소는 작업장·논밭·길가였으며, 오전과 오후 더위가 심한 시간대에 집중됐다. 전문가들은 노인·영유아·수험생 등 취약계층의 주의와 함께 적절한 냉방·수분 섭취, 충분한 휴식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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