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임직원이 10년 전 인도네시아 석탄화력발전소 시공 공사 수주 과정에서 현지 공무원에게 억대 뇌물을 건넨 사건에 대해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기업 수사가 자칫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검찰의 신중한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홍용화)는 26일 현대건설이 인도네시아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 시공·운영 과정에서 찌레본 군수 순자야 푸르와디사트라에게 약 5억 5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국제뇌물방지법 위반 등)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2016년 7월 현대건설 임직원이 인도네시아 찌레본 화력발전소 2호기 건설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민원을 무마할 목적으로 당시 지역 군수였던 순자야 푸르와디사스트라에게 6차례에 걸쳐 5억 5000만 원을 뇌물로 건넸다고 의심하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현대건설로부터 돈을 받은 순자야 전 군수는 2019년 5월 관련 혐의로 현지 법원에서 징역 5년, 벌금 2억루피아(약 1700만 원)를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순자야 전 군수는 “현대건설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공무원에 대한 뇌물 공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1998년 제정된 ‘국제상거래에 있어서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국제뇌물방지법)’에 따라 처벌 대상이다. 검찰은 국내 기업 압수수색과 형사사법공조를 통한 방대한 해외 자료 확보, 현지 조사 등 전방위 수사를 벌인 결과 이 사건이 법 적용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착공 직후부터 시작된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의 시위가 9개월간 이어졌고 수백 명이 공사 현장 출입문을 봉쇄하며 각목·쇠파이프를 휘두르거나 돌을 던져 펜스를 파손하고 폐타이어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 시위로 번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군수는 ‘시위를 진압하려면 한화 17억 원 상당의 자금을 달라’고 요구했고, 피의자들은 이를 거부하다가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협상 끝에 절반만 지급하기로 합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치안 유지 대가로 금품을 요구한 부패 공무원에게 직원들의 신변 보장을 위해 돈을 건넨 사안은 국제뇌물방지법상 요건을 인정하기 어려워 불기소 처분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불기소 처분은 최근 법무부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검찰에 직권남용죄와 배임죄 수사가 공직과 기업 사회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유의할 것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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