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연수는 제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한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골절 불유합 치료부터 대규모 골결손 재건술, 경골(종아리뼈 안쪽에 있는 크고 단단한 뼈) 근위부 기형 교정 수술에 이르기까지 보기 드문 증례를 집중적으로 경험했으니까요. 수술을 참관할 때마다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구나' 싶어 몇 번이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21일 고대구로병원 정형외과 수술실 앞에서 만난 캐서린 바스(Kathryn Barth) 박사는 "정형외과 외상 분야에 진심이라면 누구든 고대구로병원에서 연수를 받아보길 추천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미국 휴스턴 텍사스 의과대학 정형외과에서 외상 세부전공 펠로우(전임의)로 근무 중인 배스 박사는 3주 전 서울로 날아왔다. 지난해 12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국제골절치료연구학회(AO·Arbeitsgemeinschaft für Osteosynthesefragen) 외상 코스에서 우연히 오종건 고대구로병원 정형외과 교수의 강의를 듣고 깊은 울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골절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
25년간 ‘골절 외상’ 한우물만 파온 오 교수의 강의는 해외 연수 기관을 정하지 못해 고심 중이던 그녀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배스 박사는 “단순한 수술 기법을 넘어선 통찰과 환자를 향한 진정성을 느꼈다”며 “오 교수님의 수술 기법과 임상적 판단 과정을 가까이에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결심을 굳혔다”고 전했다.
뼈는 우리 몸 속의 중요한 장기들을 보호하고 혈액을 만들어내며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구조물이다. 우리 몸은 크고 작은 200여 개의 뼈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은 근육과 힘줄로 단단히 연결되어 뼈대를 형성한다. 외부 충격 등으로 인해 뺘가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끊어진 상태가 골절이다. 뼈는 상처 조직을 남기지 않고 치유되는 조직이다. 단순 골절의 경우 부러진 뼈의 위치를 바로 잡고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만으로 충분하다. 골절이 치유되면 뼈는 원래의 강도와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골절된 뼈의 유합을 촉진해 신체 기능을 회복시키고, 골절 후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을 예방·치료하는 것 까지가 치료 과정의 완성이다.
골절 치유는 여러 단계에 걸친 복잡한 생물학적 과정을 거친다. 그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잘못되면 제대로 치유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 해외 관찰 연구들에 따르면 2.5%에서 많게는 10%의 환자가 골절 후 치유가 완전히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됐다. 특히 사고로 인해 부러진 뼈의 끝부분이 피부를 뚫고 나오거나 피부, 근육 등의 조직이 손상돼 부러진 뼈가 외부에 노출되는 '개방성 골절'은 정상적인 유합이 어려울 뿐 아니라 다양한 합병증 발생 위험이 크다.
정형외과라고 하면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나 '정재영'(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같은 인기 진료과목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오 교수의 시작은 슬관절(무릎관절)이었다. 수련 중 우연히 골절 분야로 방향을 바꾼 오 교수에게 지난 25년은 수련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오 교수는 “골절 수술에 본격적으로 뛰어든지 2년쯤 됐을 때 6층 높이에서 떨어져 골반 뼈가 산산조각난 채 실려왔던 여성 환자를 수술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오래 전 기억을 끄집어 냈다. 1밀리미터라도 어긋나지 않도록 정확히 골반 뼈를 맞춰야 환자가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움직임에 제약이 없고, 중증 합병증인 외상 후 만성 골수염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 경험이 많지 않았던 시기라 환자보다 제 심장이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며 “뱃속에서 펄떡펄떡 뛰는 크고 작은 혈관과 장기들 사이로 눈에 보이지 않는 뼛조각들을 정확히 맞추느라 진땀을 뺐다”고 돌아봤다. 그런 경험 덕분이었을까. 수술이 없는 날도 텅 빈 수술실에 홀로 남아 뼈 모형을 맞춰보고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철저함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골절 환자의 약 2~10%는 뼈가 붙지 않는 불유합을 겪는다. 여기에 감염까지 겹치면 절단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오 교수는 수십 차례 수술에도 실패한 환자, 50년 넘게 고름이 멈추지 않았던 만성 골수염 환자에게서조차 재건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뼈만 붙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정렬·길이·근육·신경까지 제자리에 돌아와야 환자의 삶이 돌아온다”는 그의 원칙은 환자와 가족에게 ‘두 번째 삶’을 선물해왔다. 그가 개발한 골절수술법은 AO 국제 표준으로 채택됐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과 2021년 연이어 AO 아시아·태평양 교육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됐고 6년간 아·태 지역 정형외과 전문의들의 골절치료 교육을 총괄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이 2014년 국내 유일의 외상 전문의 육성기관으로 지정된 데도 오 교수의 공로가 컸다. 고대구로병원의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는 올해 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주인공 백강혁처럼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외상 전문의를 길러내는 집중 수련 프로그램을 11년째 운영하고 있다. AO 순회 펠로우십등 당기 방문 의료진이 한해 평균 10명 정도 방문하는 것을 고려하면 지난 15년간 국내외를 통틀어 그의 손을 거쳐간 의료진이 수백명에 달하는 셈이다. 오 교수는 “뉴욕에서 바로 교원으로 임용될 예정인 배스 박사가 제게 배우러 온 건 정말 의미있는 일”이라며 “외상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골절 분야의 뛰어난 전문의를 더 많이 양성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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