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절정인 ‘삼복 더위’가 지나간 8월 하순인데도 여전히 무더위는 계속되고 있다. 밤에도 최저기온이 25℃를 웃도는 열대야마저 이어지고 있다. 열대야 현상이 가져오는 가장 큰 건강 문제는 불면증으로 인해 깨져버리는 생체 리듬이다. 낮에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잠 못 이루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신건강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문가들은 최대한 좋은 수면환경을 조성하고, 규칙적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게 열대야 불면증을 퇴치하는데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20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 들어 서울에서 열대야가 발생한 기간은 35일로 지난해의 48일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많았다. 이날도 아침 서울의 최저기온이 25℃를 기록해 열대야를 면치 못했다. 열대야 현상은 전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 이상으로 유지되는 것을 뜻한다.
기온이 25℃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너무 더워서 사람이 잠들기 어렵다. 우리 몸의 체온은 아침에 기상하면서 오르기 시작해 저녁에 최고점에 이른 다음 잠자리에 들 무렵 점차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생체 리듬은 몸에서 열을 발산하면서 체온이 내려가 잠이 들도록 하지만 열대야가 체온 하락을 방해하면 수면하기가 힘들어진다. 신현영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열대야로 신체에서 열을 발산하기 힘들어지면 체온이 상승하고, 잦은 각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수면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생산도 억제된다”고 설명했다.
자다 깨기를 거듭하면서 수면 상태가 지속되는 시간이 짧아지면 수면의 질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수면 부족 현상은 낮 시간 동안 피로감 혹은 불쾌감, 주의력·집중력 저하, 사회적 기능 장애, 기분 장애, 동기부여 및 에너지 감소, 오류·사고 증가, 과잉행동이나 충동성·공격성 증가 등 다양한 신체 기능 저하로 이어진다.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인지·지각·학습·언어·주의 등의 기능이 저하되고 심혈관질환 위험도 커진다.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아 우울증과 이로 인한 극단적 선택의 가능성도 있다. 신경퇴행성질환, 알츠하이머병, 섬망 등과 관련성도 제기된다. 신 교수는 “8개의 코호트 연구를 메타 분석한 결과 불면증 병력이 있는 사람은 암 발병 위험이 24% 증가했고 별도의 메타 분석 결과 불면증이 폐암의 발병 확률을 11% 늘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층과 6~12세 소아, 정신질환자, 심혈관질환자는 열대야로 인한 수면장애가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불면증으로 인해 불안·기분장애·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약물남용 등이 나타나거나 알츠하이머성 치매, 수면무호흡증, 만성 폐질환 및 신장기능 저하 등이 발생하면 의학적 진단과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열대야를 극복하고 질 좋은 수면을 쟁취하려면 가능한 한 체온을 낮추는 게 우선이다. 실내온도는 24~26도로 유지하되 에어컨은 장시간 가동하면 습도가 너무 떨어져 호흡기가 건조해지고 감기에 걸릴 위험이 있기에 1시간 이상 켜두지 않는 게 좋다. 가능하면 소음과 빛은 최소화하고 얇은 소재의 시원한 잠옷을 입고 얇은 이불로 배를 덮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규칙적 생활습관 유지도 중요하다. 뇌 속 생체시계를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되도록이면 같은 수면시간과 활동시간을 유지해 수면의 템포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전날 못 잔 잠을 보충하겠다고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어 오랜 시간 동안 어떻게든 잠들겠다고 애쓰는 행동이 되레 불면증을 악화시켜 불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눈만 말똥말똥한 상태가 지속되면 차라리 잠자리에서 나와야 한다”며 “컴컴한 곳에 앉아있으면서 조금이라도 잠이 올 때 다시 잠자리에 들라”고 조언했다.
잠들기 전 ‘꿀잠’을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 초저녁에 30분 정도 가볍게 조깅이나 속보, 산책 등 운동을 하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며 몸을 이완시키는 게 좋다. 밤에 술·커피·콜라·녹차 등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건 피해야 한다.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는 숙면을 방해하며 담배는 각성 효과가 있다. 정 교수는 “술은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수면 뇌파를 변화시켜 깊은 잠을 못 자게 한다”며 “숙면을 위해선 식사시간도 일정하게 맞추고 저녁에는 과식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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