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영화화하고 싶다고 생각한 지 20년이 돼 가네요.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해서 사춘기 시절부터 많이 읽었는데 이렇게까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작품은 없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19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신작 ‘어쩔수가없다’ 제작보고회에서 20년간 마음에 품어온 이야기를 영화로 선보이는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박 감독이 2022년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이 작품은 미국 작가 도널드 E. 웨이트레이크의 소설 ‘액스’가 원작이다.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뒤 아내 미리(손예진 분)와 두 자식,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준비하며 자신만의 전쟁에 나서는 이야기를 블랙 코미디 장르로 연출했다. 박 감독은 “미스터리는 누가 범인이냐는 종류가 많고 수수께끼가 풀리면 해소되어 버리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를 따라가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수께끼는 없고 그의 심리, 보통 사람이 어쩌다 그렇게 됐고 사회 시스템에서 어떻게 내몰리게 되는지를 묘사하기 때문에 몇 번을 곱씹어봐도 재밌었고 음미할 가치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주 씁쓸한 비극인데 거기에 새로운 종류의 부조리한 유머를 넣을만할 가능성이 보였다”며 “소설 자체도 그런 면을 좀 가지고 있지만 내가 만든다면 더 슬프게 웃긴 유머가 살아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어쩔수가없다’는 27일(현지 시간)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열리는 제8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한국 영화가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은 고(故)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이후 13년 만이다. ‘어쩔수가없다’는 요르고스 란티모어 감독의 ‘부고니아’,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 노아 바움백 감독의 ‘제이 켈리’ 등 21개 작품과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놓고 경쟁한다.
앞서 박 감독은 2005년 ‘친절한 금자씨’로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젊은 사자상, 베스트 이노베이션상, 미래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나이가 들다 보니까 뭐만 했다 하면 20년 만이더라”며 “‘친절한 금자씨’가 경쟁 부문에 간 지 20년 된 건 맞는데 ‘쓰리, 몬스터’로 비경쟁 부문에 간 적도 있고 심사위원으로 간 적도 있다 보니 오랜만에 간다는 기분은 별로 안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가 오랜만에 간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이 작품은 다음 달 17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도 선정됐다.
‘어쩔수가없다’에서 만수 역을 맡아 극 전체를 이끄는 이병헌은 시나리오를 읽고 박 감독에게 “웃겨도 되냐”고 물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 재미가 있었는데 감독님이 만드신 작품이 맞나 할 정도로 웃음 포인트가 많더라”며 “내가 다르게 읽은 건지 묻는 차원에서 웃겨도 되냐고 했는데 감독님이 ‘그러면 더 좋다’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저 웃긴 작품이 아니라는 걸 영화를 보면 느끼게 될 것”이라며 “감독님은 이 작품이 슬프면서 웃기다고 했는데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들면서 웃는 상황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선출 역을 맡은 박희순도 영화가 코믹에 방점이 찍혔다고 강조했다. 그는 “극적인 상황이 될수록 웃음의 강도가 커지는데 페이소스도 커지는 특이한 작품”이라며 “박 감독이 이번에는 칸국제영화제를 포기하고 천만 관객을 노리나 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만수의 아내 역을 맡아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손예진은 “이 작품을 하지 않으면 후회하겠다 생각했다”며 “너무나 강렬한 서사였고 책을 덮고도 ‘내가 하는 게 맞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도 박 감독의 신작에 합류하게 된 소감을 전했다. 이성민은 “시나리오를 받고 무슨 역할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고 염혜란은 “‘아름다운 미모’ 이런 말이 있어서 너무 걸려 이 역할이 내 역할이 맞나 싶었다”고 말했다. 차승원은 “47명 정도의 배우가 나오는데 내가 6번째”라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래서 하게 됐다”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어쩔수가없다’는 국내에서 9월 중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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