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돌봄 노동자들은 여성이 많은데, 한국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소득이 낮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이들 노동자가 OECD보다 열악한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발레리 프레이 OECD 선임 경제학자 및 사회 리스크 유닛 헤드는 12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여성경제회의(WEF) 민관 정책회의가 종료된 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고령화 시대 성평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WEF는 아태 지역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와 성평등 촉진을 위해 2011년부터 매년 개최된 장관급 회의체다. 이번 WEF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여성의 경제 참여 확대’라는 주제하에 진행됐으며 정책 파트너십 관계인 APEC 정상회의가 올해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리게 되면서 14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개최됐다.
앞서 프레이는 OECD의 통계를 인용해 2000년 이후 아태 국가들의 기대수명이 3년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20~64세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수를 나타내는 ‘노년부양비’도 2060년에 올해 대비 2배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2020년 22명이던 노년부양비가 2060년에는 90명으로 늘어나 압도적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고령화 흐름 속에서 대부분의 돌봄 노동은 여성이 전담한다. 지난해 여성 기혼자의 성별 일평균 가사 노동시간은 206시간으로 남성 기혼자(69시간)의 약 3배에 달했다. 반면 여성 노인의 빈곤율은 남성 노인을 앞선다. 빈곤통계연보에 따르면 여성 노인 빈곤율은 가처분소득 기준 43.4%로 남성 노인(31.2%)보다 높았다.
프레이는 “여성이 어머니가 되더라도 노동시장에서 계속 남아 있으면 소득을 자연히 높이게 된다”면서 “남녀 간 소득 격차가 생기면 그 자체로도 사회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입해서 공공 부문 장기 돌봄을 확대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장기요양사의 근무 조건, 소득도 공공과 민간이 함께 참여해서 적절한 급여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WEF 의장을 맡은 신영숙 여성가족부 장관 직무대행(차관)과 아니타 페냐 사베드라 여성경제정책파트너십(PPWE) 의장, 개비 코스티건 APEC 기업인 자문위원회(ABAC) 위원 등도 참석했다.
신 차관은 WEF 개회사를 통해 “OECD에 따르면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가 줄어드는 경우 2060년까지 OECD의 평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9%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면서 “디지털 전환, 인구구조 변화 등은 우리가 그동안 이룬 진전을 더욱 공고히 하고 도약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유럽 최대 규모의 방산 기업 BAE시스템즈 전무이사를 맡고 있는 코스티건 위원은 “지난해 여성의 벤처캐피털(VC) 투자 접근성이 전 세계 투자의 2%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재계와 금융이 노력해 대출·투자와 관련해 여성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VC에도 동등한 접근성을 제공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WEF는 21개국 회원경제의 만장일치로 △인구구조의 변화와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의 역량 강화와 경제 참여, 리더십 확대 강화 △여성 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해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기로 다짐 △양질의 돌봄 제공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실현한다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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