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주인이 계약 갱신 때 임대료를 2배, 3배 비싸게 부르니 공실이 늘어납니다. 환산보증금을 폐지해 모든 상가에 임대료 인상 5% 상한을 적용해야 합니다. "
정원오(사진) 성동구청장 겸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지방정부협의회 회장은 8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상가 공실의 가장 큰 원인이 현실과 동떨어진 환산보증금 제도에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구청장이 회장으로 있는 협의회는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이 외곽으로 밀려나고 해당 지역내 공실이 심각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전국 지방자치단체 모임이다. 협의회 주도로 관련 법이 제·개정되면서 임대료 인상 상한이 연 9%에서 5%로 낮아지고 계약갱신요구권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됐다.
다만 법 개정 후에도 일정 환산보증금을 초과하면 임대차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여전하다. 환산보증금은 월세에 100을 곱한 뒤 보증금을 더한 금액으로 임차인이 임대차보호를 받는 자격 기준이 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시행령에 따르면 5% 상한이 적용되는 환산보증금이 지역별로 △서울시 9억 원 △과밀억제권역·부산시 6억 9000만 원 △광역시·세종시·김포시·용인시 등 5억 4000만 원 △그 밖 지역 3억 7000만 원으로 각각 정해져 있다.
정 구청장은 환산보증금 초과시 임대차보호 예외를 규정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촉구했다. 그는 “서울에서는 환산보증금 9억원 이하만 5% 상한 적용을 받는데, 성수동의 경우 기준을 초과한 상가가 20.5%에 달한다”며 “고가 상가는 주변 상권의 임대료 상승을 이끌며 젠트리피케이션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 가로수길은 환산보증금 제도로 망가진 대표 사례로 꼽힌다. 정 구청장은 “가로수길 공실이 급증했지만 건물주는 월세를 내리면 건물 가치가 떨어진다며 차라리 상가를 비워두고 있다"며 “애초에 비싼 상가에도 임대료 상한이 있었다면 공실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당 중대형 상가 임대료에서 △명동 20만 1410원 △강남대로 11만 7540원 △신사역(가로수길) 9만 3620원으로 이들 주요 지역의 상가 임대료는 서울시 전체(5만 5090원)의 2~4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임대료 급등에 1분기 공실률(쿠시먼앤웨이크필드코리아 조사)은 △가로수길 41.6% △강남 18.9% △이태원 15.7% △한남동 10.8% △홍대 10.0% △명동 5.2%를 각각 기록했다.
지방도 문제가 심각하다. 협의회 조사에서 전주한옥마을 일대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핵심 상권에서는 33㎡(10평) 상가 환산보증금이 10억 5000만 원에 달했다. 지방에서 임대차보호를 받을 수 있는 환산보증금 기준(3억 7000만 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 결과 전주 동부지역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한국부동산원 조사)은 올해 1분기 28.72%를 기록하고 있다. 전북 군산의 수송‧조촌동 중대형 상가 공실률도 20%를 웃돌면서 관련 문제가 심각해 지고 있다. 정 구청장은 “전주·경주·군산에 임대료가 환산보증금 기준을 넘은 상가들이 많다”며 “공실이 늘며 상권이 정체성을 잃고, 스타벅스나 외국계 브랜드가 자리를 차지하면 관광객이 굳이 왜 찾아오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협의회와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3법(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지역상권 상행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환산보증금 기준 폐지 △보증금 증액 청구 기간 1년→2년 연장 △상가건물 임대차 계약신고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다. 정 구청장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환산보증금 기준이 폐지되고 계약신고 내용이 공개돼 관리비 인상 꼼수도 막을 수 있다”며 “새 정부에도 폐지를 적극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도시계획 차원에서 상가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정 구청장의 생각이다. 그는 “외국에서는 건물 하나를 실내 주차장으로 바꿔서 공실 문제와 주차난 문제를 해결한다"며 “한국도 상가를 주거시설로 바꿀 때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용도변경시 우대 혜택을 주면 공실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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