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의 법적 분쟁은 감정이 핵심입니다. 법리는 도구일 뿐 결국은 감정을 어떻게 수용하고 정리하느냐가 중요하죠.”
최근 ‘가족, 법정에 서다’라는 책을 출간한 배인구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족 간 법정 분쟁에서 감정이 어느 순간 풀리면 금세 합의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감정이 끝까지 풀리지 않으면 진흙탕 싸움까지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한 그는 2017년 3월 변호사가 돼 가족 안의 분쟁을 다루는 법조인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가족, 법정에 서다’에 대해 그는 “이 책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인데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벌어지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의 기록”이라며 “단순한 사건 소개를 넘어 가정법원이 다뤄온 이혼·양육권·입양·상속 등 복잡한 분쟁 속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그려낸 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에서 장남만 편애했던 부모에 대한 서운함, 병든 부모를 돌보던 자녀의 희생을 외면한 가족들의 냉담함 같은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았다.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묻자 배 변호사는 미성년 후견 관련 사건을 언급했다. 배 변호사는 “부모를 잃은 미성년자가 성인이 된 후에도 재산 관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개입은 때때로 위험하다”며 “사망한 부모의 보험금을 노리는 친척들, 경제적 약자를 유인하는 사기꾼 등이 많은데 그래서 신탁 같은 제도를 통해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 변호사는 가족 간 분쟁과 타인 간 분쟁의 가장 큰 차이로 ‘감정의 개입 정도’를 꼽았다. 가족 간 분쟁은 금전보다 감정이 앞서 합의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감정이 풀리지 않아 경제적으로 불리함에도 끝까지 따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책 사유를 판결문에 명시하기를 원하는 이혼 사건이 그렇다고 털어놓았다. 배 변호사는 “이혼 시 재산 분할과 관련해 합리적 금액을 제시해도 판결문에 ‘상대의 잘못을 명시해달라’는 요청이 있다”며 “이는 법적으로 불필요하지만 감정적으로 절실하니 요구하는 것인데 결국 이런 판결문이 자녀 등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 문제는 법이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말에 그는 깊이 공감한다. 그래서 배 변호사는 재판보다는 조정을 통한 해결을 지향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가사소송법에는 ‘조정전치주의’가 명시돼 있기도 하다. 조정전치주의는 분쟁 해결을 위해 법원의 조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 원칙을 의미한다. 이는 협상 당사자 간 성실한 교섭을 유도하고 평화적 해결을 목표로 하며 이혼 등 가사소송과 노동쟁의에서 주로 적용된다.
배 변호사는 가사소송과 관련된 법 조항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실제 이혼 무렵 합의한 재산 분할 내용에 대해서는 효력을 인정해주지만 혼인 중 작성한 재산 분할 약정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예를 들어 결혼 생활 중 ‘바람을 피우면 재산 없이 집을 나간다’고 약속했어도 실제 이혼 시 재산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부가 혼인 전 이성적으로 부부재산계약을 한 후 결혼 생활 중 이혼할 경우 법원은 이 같은 부부재산계약은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는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실혼에 대한 법의 과도한 개입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적 구속에서 자유롭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법은 사실혼 관계인지 여부만 판단하고 과도하게 개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배 변호사는 ‘가족, 법정에 서다’라는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가족이기에 상처받는 관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물으면서 함께 고민하려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가족 간 법적 분쟁에서는 감정을 잘 다스려야만 합리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라며 “가족 간 소송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고 가족이기 때문에 소송을 벌이면서 더욱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를 위한 두 번째 책도 준비 중이다. 그는 “‘가족, 법정에 서다’ 후속은 혼인신고, 부부 간 약속, 결혼 후 마주칠 수 있는 법적 문제들을 질문과 답변(Q&A) 형식으로 풀어내는 책이 될 예정”이라며 “다음 책도 결국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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