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5년의 국정철학을 설계하는 ‘인수위원회’ 성격의 국정기획위원회가 출범한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새 정부의 정책 로드맵을 담당하는 국정기획위의 활동은 정부의 성패를 가늠하는 첫걸음이다. 역대 정부는 법률에 근거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또는 대통령 궐위로 인한 보궐선거 후 출범한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라는 두 가지 형태의 기구를 운영했다.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후자의 사례에 해당한다. 대통령직 인수 과정은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둔 2003년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법적 기반을 갖췄다. 이 법은 인수위의 기능을 정부의 조직·기능 및 예산 현황 파악, 정책 기조 설정 준비 등으로 명시해 인수위가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하는 핵심기구임을 법적으로 딋받침한다.
김대중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의 핵심 정책의 공과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정보기술(IT) 산업 육성으로 경제 회생의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 해고와 고용 불안정을 야기하며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다. '햇볕정책'으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열었지만 대북송금 논란과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는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 의제를 국가 최우선 순위로 격상시키고,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했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 결정을 받고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 입법이 좌초되는 등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했으나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외교'는 각각 환경 파괴와 막대한 국부 손실을 초래한 대표적 실패 정책으로 평가됐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임기내내 실체가 모호하다는 비판 속에 국정농단과 연계되며 신뢰를 잃었고,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무능한 대응은 국가 재난관리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함께 정권의 정당성을 붕괴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소득주도성장으로 불평등 완화를 시도했으나 25회가 넘는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및 수도권의 집값을 폭등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재정 건전성 확보를 추진했으나 ‘역대급 세수 펑크’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정부의 재정 운용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또한 미래성장동력인 연구개발(R&D) 예산의 대폭 삭감 조치는 과학기술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무엇보다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라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로 인해 대통령 탄핵과 파면으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최악의 통치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이러한 역대정부의 경험으로부터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과 관련해 세 가지의 핵심 전략 과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정 과제의 전략적 집중이다. 100개가 넘는 과제를 나열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대통령은 '12대 중점 전략과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나머지 과제는 책임총리에게 위임해 국정 동력의 분산을 막는 일이다.
둘째, 과거 정책 실패로부터의 학습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 정책의 경우 장기적이고 일관된 공급·세제·금융 로드맵을 제시하고, 시장 심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균형발전의 경우 공공기관의 지방으로의 물리적 이전을 넘어 지역 고유의 장점을 살리는 '기능적 연결'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5극3특’ 전략의 성공을 위해 초광역교통망과 데이터 고속도로를 구축하고,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며 모든 대규모 국책사업은 투명하고 독립적인 환경·경제성 평가와 지역주민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한다는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 경제정책 전략의 경우 '기본사회'와 '인공지능(AI) 리더십'이 '창조경제'나 '소득주도성장'처럼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재원 조달 방안을 포함한 구체적인 시스템으로 설계되고, 공론화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셋째, 신뢰받는 국정운영 시스템 마련이다. 윤석열 정부의 파탄에서 보듯 민주적 규범과 신뢰는 국정운영의 뿌리다. 정책 수요자 관점의 소통을 강화하고, 부처 간 엇박자를 조율해 정책 일관성을 확보하며 국정과제 이행에 약 700건의 법률 제·개정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감안해 야당과의 유연한 입법 전략을 통해 국정 마비를 피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은 원대한 비전의 제시가 아니라 역대정부의 역사적 실패로부터 얼마나 철저히 학습하고 실천하는지에 달려있다. 핵심은 야심찬 국정 의제를 실용적이고 일관되며 신뢰받는 국정모델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질적인 정치적 갈등과 정책의 급선회를 끝내고, 유능한 국가 경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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