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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정부 R&D, 실패를 허락하라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 사진 제공=벤처기업협회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알게 모르게 벤처기업의 기술을 접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새로운 소식을 확인하고 메신저로 아침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연다. 휴대폰 속 수많은 앱들을 활용해 업무를 보고 저녁 식사는 전단지 대신 배달 플랫폼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한다. 벤처기업의 영향력은 눈에 보이는 일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공지능(AI)으로 생체 정보를 분석해 환자 맞춤형 신약을 개발하고, 드론을 활용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의 위험 요소를 탐지함으로써 산업재해를 예방한다. 우리가 무심코 누리는 거의 모든 것에는 벤처기업의 기술이 숨어 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의 삶과 산업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1980년대 한국 경제는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산업구조는 제조업과 노동집약적 산업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기술의 발전을 요구했고, 그 흐름 속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벤처기업들이 탄생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고도화됐으며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최근 벤처기업 산업구조 변화를 분석해보면 2014년 67.6%에 달했던 벤처기업 내 제조업 비중은 지난해 54.5%로 감소했다. 반면 ICT서비스업은 10.9%에서 21.3%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우리 경제의 혁신 동력이 전통 제조업을 넘어 AI·바이오 등 기술 기반 신산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벤처인들의 도전 정신과 더불어 벤처기업이 산업의 변화를 이끌어 왔던 원천은 바로 연구개발(R&D) 영역이다. 2023년 말 기준 벤처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은 4.6%로 중소기업(0.8%), 중견기업(1.1%), 대기업(1.8%)을 압도한다. 그동안 벤처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와 성과를 견인해온 정부의 R&D 지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R&D 지원 시스템은 여전히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우리의 R&D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 갇혀 있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과제에만 예산을 배정하는 관행은 기술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연구자들은 도전을 주저하고 과도한 행정 부담에 시달리며 본연의 연구에 집중하지 못한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좋은 본보기다. DARPA는 파급력 있는 미래 기술 확보를 목표로, 실패 가능성이 높더라도 성공 시 미래 기술 선도자가 될 수 있는 연구에 집중한다. 또 관료주의적 개입을 최소화해 창의적이고 안정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이제 우리도 R&D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DARPA의 사례처럼 국가전략기술 분야를 설정하고 미래를 좌우할 도전적인 R&D를 전담시킬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정권의 변화나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혁신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혁신 기술 개발을 잘 하는 우수 벤처기업에 R&D 예산 투자 비중을 늘리고 집중해 미래를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성공에는 개발 기술의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고, 실패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 문화 역시 필요하다. 선도자의 길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실패를 동반한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에서 경험을 쌓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다. 벤처기업들이 과감하게 도전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에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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