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내부 분열과 파벌 싸움을 지켜보는 많은 유권자들의 심정은 착잡할 것이다. 단순히 이들이 갈라져 싸우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 헌법의 설계자인 제임스 매디슨이 언급했듯 정치에서 분파가 나뉘고 서로 경쟁하는 현상은 자연스럽고, 때로는 바람직스럽기까지 하다. 지금 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그 싸움의 본질이 수준 이하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부 갈등은 여전히 ‘친윤(親尹) 대 반윤(反尹)’이라는 인물 중심의 대립 혹은 ‘반탄(反彈) 대 찬탄(贊彈)’이라는 사안 중심의 논쟁에 머물러 있어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미래를 희구하는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와 계엄 및 탄핵에 대한 입장 정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 정리가 보수 재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정당은 정치권력의 획득을 목적으로 결집한 사람들의 결사체다. 다수의 유권자들은 국민의힘 당권 경쟁에서 정권 창출을 위한 ‘승리 공식’을 보고 싶어 한다. ‘친윤’ 진영은 김문수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41.15%나 득표한 이유가 반윤·찬탄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후보는 도저히 선택할 수 없었던 유권자들의 전략적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반윤들이 자기 일처럼 팔 걷고 나서서 도왔다면 이길 수 있었던 선거였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그 믿음은 같은 입장을 고수해도 집권이 가능하다는 착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윤 역시 승리 전략의 부재라는 점에서 친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친윤만 정리한다고 해서 보수 집권이 가능할까. 반윤과 찬탄이 변화의 첫 단추가 될 수는 있지만 여기에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는 강력한 ‘플러스 알파’가 없다면 그 단추는 큰 의미가 없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유권자 성향은 다양하며 이들의 정당 충성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특히 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그 변화가 더욱 빠르게 일어난다. 따라서 정당이 정권을 창출하려면 특정 지지층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성향의 유권자 집단을 포섭해 ‘승리 연합(winning coalition)’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내부 싸움에서는 그런 전략적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친윤이든 반윤이든 정권 창출을 위한 외연 확장과 연합 구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족하다. 중원을 민주당에 내준 국민의힘은 계엄과 탄핵 이전부터 이미 망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벌써 잊었나.
친윤이든 반윤이든 국민의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하고 대권을 두 번씩이나 거머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특유의 카리스마,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공격적 미디어 전략, 지지층 결집을 위한 음모론 활용 등이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트럼프의 집권은 단순한 선동이나 이미지 정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승리 연합을 구축하려는 비전과 정책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장 활발하게 추진된 시기였다. 동시에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급속히 붕괴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제조업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되면서 노동자 계층과 저소득층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고, 중산층 역시 점차 축소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끝날 기미 없이 장기화되었고, 2008년에는 금융위기가 미국을 강타했다. 그런 와중에도 민주당과 공화당은 모두 ‘자유무역’과 ‘미국의 국제 리더십’을 거의 신념처럼 반복하며 기존 정책을 고수했다. 바로 그 틈을 타 트럼프가 등장했다. 그는 “잊힌 미국인들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기존 정치가 외면했던 유권자들의 분노와 상실감을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트럼프는 그 타이밍을 정확히 포착했다.
트럼프는 자유주의적이고 친세계화적이었던 기존 공화당과 미국 보수의 본류를 국가주의적이고 반세계화적인 방향으로 재편했다. 그 결과 반트럼프 성향의 인사들은 자연스럽게 주변화되었고, 트럼프에 비판적이던 마르코 루비오와 린지 그레이엄 같은 인물들도 점차 친트럼프 진영으로 흡수됐다. 반면 밋 롬니와 조지 W 부시와 같은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은 영향력을 잃고 고립됐다. 비전과 정책의 싸움에서 승리하니 인적 청산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트럼프는 단순히 당내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공화당의 정체성과 지지 기반 자체를 바꿔놓았다. 1933년 뉴딜 이후 민주당의 든든한 지지 기반이었던 저소득층과 노동자 계층은 이제 트럼프의 공화당으로 이동했다. 심지어 일부 소수인종과 청년층까지 트럼프 연합에 합류하면서 민주당의 기반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과감한 ‘이념 전환’은 트럼프가 시대적 흐름과 미국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 승리 연합을 구축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그 이념 전환의 배경에는 ‘신보수주의’라는 보수 재건 담론이 큰 역할을 했다. 2000년대의 '네오콘’이 자유주의의 확장을 추구했다면 2020년대의 신보수주의는 자유시장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적 안정과 소비 중심에서 생산 중심으로의 보수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와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정책을 강조하고 가족과 신앙 공동체의 복원을 지향한다. 따라서 공동체를 해치는 과도한 이민자 유입 정책과 전통적 가족 가치 및 기독교적 가치를 훼손하는 문화 좌파적 정책에 반대한다.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며 해외 개입보다는 국내 재건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보수의 방향성을 재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는 JD 밴스 부통령이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록브리지 네트워크’가 있다. 이 조직은 신보수주의의 핵심 권력 네트워크로 트럼프 이후의 트럼피즘이 더 강력하고 조직화된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트럼프의 이념 전환 방향이나 비전과 정책 혹은 미국의 신보수주의 자체를 옹호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트럼프가 과감한 ‘이념 전환’과 ‘승리 연합’ 구축을 통해 어떻게 당을 장악하고 대권을 거머쥐었는지를 국민의힘이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극우에는 있지만 한국의 극우에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포퓰리즘이다. 한국 극우의 기반은 ‘윤어게인’, 부정선거 음모론자, 반중·반공주의자, 기독교 원리주의자 그리고 소외된 20~30대 청년층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승리 연합을 구축하기엔 태부족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처럼 제조업 붕괴나 대규모 이민 문제가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극우가 약진하기 어려운 정치적 토양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대로 된 포퓰리스트로서 다른 세력을 포섭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승리 연합은 요원하고, 정권 창출은 불가능하다. 중도우파 역시 승리 연합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우클릭하며 구축한 승리 연합을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지, 그의 실수만을 기다리는 전략으로는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보수가 그래도 약진했던 시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와 같은 복지 담론을 제시하여 진보 담론을 선점하고, 고 박세일 교수가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이념적 기획을 통해 보수의 승리 서사를 구축했을 때였다. 국민의힘이 승리 공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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