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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 다른 운명[안성훈 변호사의 ‘행정법 파보기’]

안성훈 법무법인 법승 변호사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흥미로운 점은 사건의 여정이다. 정 전 위원장은 같은 사안으로 먼저 집행정지 신청을 냈지만 각하됐다. 그런데 본안 소송에서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각하’는 법원이 아예 본안 심리를 하지 않기로 하는, 말하자면 ‘문전박대’와 같은 것이다. ‘인용’은 소송을 청구한 당사자가 법원의 문턱을 넘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는 것이므로 거리가 매우 멀다. 같은 사안에 관한 사건, 같은 당사자, 같은 쟁점인데도 한 번은 행정소송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물러서게 된 반면 최종적으로는 승소했다. 행정소송의 대상 판단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잘 알려주는 사례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행정소송의 대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으로 추상적이고 또 열려 있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어떤 행위에 대하여 행정소송(취소소송, 무효등확인소송 및 부작귀위법확인소송 등의 항고소송)으로 다투기 위한 전제를 ‘처분등에 해당할 것’으로 삼고 있다. ‘처분등’이란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 등을 의미한다. 말 자체도 쉽지 않지만 그 개념 하나 하나를 따져보면 만만한 것이 없다. 국가권력이 다양한 주체의 협조를 얻어 이루어지는 복잡하고 다단한 현대의 행정시스템에서는 ‘행정청’의 개념부터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구체적 사실’이라는 것,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 행사 또는 그 거부’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이에 준하는 행정 작용까지 살피자고 하면 행정소송의 대상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정 전 사장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집행정지 사건을 심리한 법원에서는 정 전 위원장에 대한 해촉 통지가 공법상 계약에 따른 대등한 당사자의 지위에서 한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우월한 지위에서 행한 행정처분이 아니라고 보았다.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고 당사자 간의 문제라는 것이 요지다. 그런데 본안 사건에서는 그에 대한 판단을 바꾸었다. 우월적 지위에서 행사한 공권력이라는 취지다. 방심위가 국가기능을 분담하기는 하지만 국가기관과는 독립된 외부 단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그 위원장직에 대한 위촉이나 해촉은 법 형식적으로 대등한 지위에서의 행위로 볼 여지도 있으나 실질적인 부분까지를 고려하면 우월적 지위에서의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법적 판단은 법원의 입장에서도 직관적이고 단순명료한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검토가 필요한 복잡한 작업이다.

법원이 행정소송의 대상을 넓히는 방향으로 판단을 바꾸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국민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주는 행위라고 판단된다면 적극적인 관점에서 검토하여 행정소송의 본안 심리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실제로 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심판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법원에서는 행정소송의 대상이라고 보는 등 오히려 행정심판위원회보다 법원이 더욱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도 보인다. 공권력을 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법원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엇이 행정소송의 대상이고 아닌지에 대한 기준이 명료하지는 않다. 행정소송의 대상인지 여부에 대하여 하급심과 상급심의 결론을 달리하는 경우도 꽤 많은 편이다. 결국 행정소송을 고려하는 당사자로서는 자신이 문제삼고자 하는 공적 주체의 행위가 법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치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분쟁으로 나설 때에는 그 리스크까지 모두 고려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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