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에 직접 참석해 “사회주의 문명 개화의 새 경관”이라고 자평하며 올해 노동당 80주년의 핵심 성과로 선전했다. 2014년 6월 최초 계획을 발표한 후 10년 만에 완공된 이 사업은 ‘김정은의 숙원’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대외에 알려졌지만 과연 성공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은 김정일 시기부터 관광 사업을 외화 획득의 효율적 수단이자 체제 통치의 도구로 여겨왔다. 특히 김정은은 수차례 “관광문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김정일이 금강산 관광을 시작했고 김정은이 마식령 스키장,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삼지연시 관광지구 등을 건설했지만 최대 투자와 최대 규모라는 타이틀을 단 곳은 단연 원산갈마다.
원산은 김정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도시다. 출생 설화가 전해지고 모친 고용희가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주한 뒤 원산에 정착했다는 추정도 있다. 확실히 밝혀진 사실은 원산에 김정은 일가의 별장(초대소)이 있고 그가 어린 시절부터 이곳을 자주 찾았다는 점이다.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인 데니스 로드먼이 2013년 김정은의 초청을 받아 이 시설을 방문한 일도 있다.
이처럼 각별한 애착과 추억이 깃들어 있기에 원산에 역점을 둔 대규모 개발이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사업의 근본적 성공 가능성을 좌우할 타당성 검토와 수요 조사는 사실상 결여돼 있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1호 지시’로 불리는 수령의 명령, 특히 현지 지도를 통한 사업은 어떤 반론이나 추가 검토 없이 즉시 강행된다. 원산갈마는 이 같은 북한 체제의 비합리성과 비효율성이 집약된 결정체다. 오늘날 제대로 된 민간기업이라면 이런 방식의 사업 추진은 상상하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교통 인프라다.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항공편 확보가 필수지만 현재 계획된 러시아 관광객을 기준으로 해도 일일 최대 170명의 평양행 항공편만 가능하다. 더욱이 갈마비행장까지의 추가 이동 등 복잡한 동선은 여행의 비효율성을 키운다. BBC 보도에 따르면 전체 여행 일정은 일주일에 달하고 비용은 한화 기준 약 240만 원으로 러시아 노동자 평균 월급보다 60%나 높다.
휴양지로서의 경쟁력 또한 의문부호가 크다.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주된 동기는 ‘금단의 오지’를 경험하려는 호기심이다. 중국인 방문객의 경우도 주로 자국의 1960~1970년대를 떠올리는 ‘시간여행’ 성격이 강하다. 현대적 시설과 서비스를 기대하는 휴양지로 북한을 찾을 이유는 거의 없다.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이난을 비롯해 러시아의 흑해 연안, 튀르키예, 태국 등과의 가격·접근성을 비교하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보다 근본적인 한계는 자연환경이다. 원산은 여름 휴양지임을 표방하지만 속초보다 평균 해수 온도가 4도 낮고 해수욕이 가능한 절정기(7~8월)에도 평균 강수일이 15일에 달한다. 실질적으로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기간이 한 달도 채 안 되지만 시설 대부분은 연중 해수욕장 이용을 전제로 설계·건설됐다. 수요와 맞지 않는 과잉 시설, 기후·입지 특성에 무지한 개발의 전형이다.
북한 내수만으로는 채산성이 나올 수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북한 1인당 국민소득은 158만 9000원에 불과하다. 일부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4박 5일 패키지가 북한 주민 대상 1인당 100달러에 판매되지만 잠재 수요도 제한적이고 팔리면 팔릴수록 적자는 커진다.
결국 김정은의 야심작이 성공하려면 한국 관광객 유치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과거 금강산 관광에는 해마다 19만 명이나 한국인이 방문했다. 육로·해로 접근성도 뛰어났고 원산 역시 금강산과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존재해 잠재 수요가 있다. 관건은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철회하고 비핵화 협상의 실질적 진전을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대역사(大役事)는 결국 김정은 체제의 허장성세를 보여주는 대형 흉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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