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좋아하게 됐을 뿐 아니라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쉐프라는 꿈이 생겼어요.”
경계선 지능인 A(23)씨는 학창시절 내내 위축되고 부정적인 시간을 보냈으며, 이에 따라 성격도 덩달아 조용해졌다. 경계선 지능인은 IQ가 71~84 수준으로 지적장애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학업·취업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같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A씨는 우연히 ‘밈센터’라는 직업역량개발 교육원을 알게 됐으며 그 중에서도 식생활활동가 양성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듣게 됐다.
이후 A씨는 과일, 채소 등 재료에 대한 이론에 대해 나름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됐으며 직접 음식을 만들어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기도 했다. 식생활활동가 양성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마다 생기는 자신감은 덤이다. 일주일에 1~2회씩 열리는 교육은 총 25번 진행되는데 A씨는 출석률 100%가 목표다.
18일 동대문구에 자리한 한살림센터에서는 식생활활동가 교육 13회차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중년기에게 필요한 영양소와 채소 등을 공부한 뒤 호박, 부추, 계란을 활용해 만두를 만들었다. 학생들은 2시간 가량 되는 교육시간 내내 행복한 표정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B(26)씨는 “처음에는 칼질이 무서워 선생님이 옆에 있어야만 가능했지만, 이제는 집에서 혼자서도 칼질 연습을 한다”며 “이전에는 외식을 즐겼지만식생활 교육을 들으며 영양가 있는 음식을 요리해 먹는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B씨는 식생활교육이 끝난 뒤 보조강사 자격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할 계획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4월부터 진행된 ‘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밈센터)’의 식생활교육활동가 1기 프로그램은 경계선 지능인 청년 10명이 참여 중이다. 참여자들은 좋은 식습관이 생긴 것은 물론 일상생활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며 다음 교육까지 재등록 의사를 내비치기도 한다.
서울시는 이처럼 경계선 지능인의 자립과 사회참여를 돕기 위해 평생 교육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 경계성 지능인은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존 복지제도에서 소외된 채 이른바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경계선지능인은 약 127만 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2030세대 청년은 약 38만8000명에 해당한다. 이들은 학교, 직장, 가정 등 다양한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움이 가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계선 지능 학생들은 학습 속도가 느리고 복잡한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개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거나 직장 내 대인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맞춤형 직업 훈련 프로그램 및 고용 지원 서비스도 요구된다. 아울러 경계선 지능인들은 낮은 자존감, 불안, 우울 등의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고 사회적 고립감과 좌절감을 느끼기 쉬운데다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이에 서울시는 2020년부터 전국 최초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조례’를 제정하고, 2022년 밈센터를 만들었다. 해당 센터에서는 선별·발굴부터 생애주기별 교육, 심리정서지원 등 통합적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청년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직무교육을 운영 중인데 △바리스타 양성 ‘커피랩’ △식생활 교육 활동가 양성 △도시 양봉가 양성 등이 대표적이다. 43명의 청년이 참여한 결과 35명이 수료해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이 중 9명은 사회적 기업인 ‘프리웨일 카페’에 바리스타로 취업하기도 했다.
밈센터가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으며 자치구나 기관에서 벤치마킹해 센터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에는 자치구 최초로 서울 노원구에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를 개소했으며, 금천구는 평생학습관 내에 지원센터를 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커피랩 등 맞춤형 직무교육의 운영을 지속하고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하반기에는 사회 인식 개선을 위해 ‘경계선 지능인 인식개선 캠페인’과 정책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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