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이상의 인구가 불교를 믿고 승려를 존경하는 태국에서 고위 승려들을 둘러싼 대규모 성추문이 터져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한 여성이 승려들과 성관계를 맺은 뒤 사진과 영상으로 협박해 거액을 갈취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16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태국 경찰은 '미스 골프'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여성 A씨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A씨는 최소 9명의 승려와 성관계를 가진 뒤 이를 촬영한 영상·사진 수만 건을 이용해 3년 동안 약 3억8500만 바트(약 165억 원)를 갈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A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결과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에서 8만 장 이상의 관련 영상과 사진이 발견됐다. 승려 중 일부는 승복을 입은 채 촬영된 것으로 알려져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방콕의 한 고위급 승려가 직을 내려놓겠다고 발표하면서 비롯됐다. 경찰은 그가 A씨로부터 ‘임신했다’는 협박을 받고 거액을 송금했으며, 이후 줄줄이 피해 승려들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전모가 밝혀졌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A씨와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진 승려 9명의 승적은 즉각 박탈됐다. 상좌부 불교 전통을 따르는 태국은 비구(남성 승려)가 인간 여성은 물론 암컷 동물과도 신체 접촉을 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가 건넨 음식조차 직접 만지지 않아야 할 정도로 계율이 엄격하다.
현지 경찰은 이번 사건에 연루된 승려 수가 최소 9명 이상이며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태국 불교계는 성범죄·마약 등 각종 비위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도덕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불교계는 수백 년의 전통과 강력한 위계 체계 탓에 내부 고발이나 실질적 변화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수라폿 타위삭 태국 종교학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태국 불교계는 관료제와 비슷한 권위주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고위 승려는 군림하고 하급 승려는 복종하는 문화가 강하다. 문제를 제기해도 곧바로 쫓겨날 수 있어 침묵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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