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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성장동력 못 키워 저성장…늦었지만 2~3개 산업의 씨 뿌려야”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외환위기 이후 민간에 성장 열쇠 넘겨줄 때 준비 안해

대기업, 위험한 길 대신 편한 길 택해 잠재력 못 키워

중기, 대기업 도전하게 규제 혁파하고 인센티브 줘야

사고 나면 과도한 책임 묻는 문화에선 신기술 못 자라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의 저성장을 우려하면서 “민관이 협력해 제대로 된 2~3개 산업의 씨를 뿌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올해 1.9%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경고했다. 사상 처음 1%대 저성장이 예고되면서 우리나라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국가가 경제성장의 키를 민간에 넘겨주면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20여 년째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민관이 협력해 2~3개 산업의 씨를 뿌려야 한다”며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려는 야망을 가질 수 있도록 규제를 과감히 풀고 인센티브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싱크탱크였던 ‘성장과 통합’은 유종일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이끌었다. 분배에 역점을 두는 진보 경제학자들까지 성장을 염려하며 담론으로 제시할 정도로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 OECD는 10여 년 전부터 한국 경제를 ‘끓는 물 속의 개구리’라고 비유하며 경고했다. 예측은 하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가 줄어 어쩔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그렇지 않다. 인구는 꾸준히 늘어왔고 줄어든 지는 2~3년밖에 안 됐다. 외려 실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잠재성장률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는 더 빠르게 줄고 있다. 우리가 성장하지 못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했고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저성장의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외환위기 전에는 우리가 국가 주도 경제성장으로 신흥국의 롤모델이 됐다. 외환위기 이후 관이 민간에 키를 넘겨준 뒤 거의 뒷짐을 지고 있다 보니 새로운 산업들이 성장하지 못했다. 주도권을 넘겨받은 대기업들이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에도 의문이 있다.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철강·조선 등 5대 산업 중 반도체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개인기로 일으킨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1970년대 초반 중화학공업 육성으로부터 나왔다. 반세기 이상 이런 산업들로 먹고살았는데 이제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새로운 산업이 나와 중첩되면서 사이클이 만들어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 글로벌화 바람이 불면서 삼성·현대 등 세계시장으로 뛰어든 기업들은 살아남았고 국내에 안주한 기업들은 무너지면서 대기업들도 양극화됐다.

-그 사이에 인터넷·바이오 산업 등이 새로 등장하지 않았나.

△네이버·카카오로 대표되는 인터넷 산업은 골목상권 등 내수를 대체하는 효과에 그쳤다. 국내시장을 과점하면서 편하게 안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여서 밖으로 나가야 할 인센티브가 별로 없었다. 해외로 나가 치고받으며 미국 빅테크에 근접한 뭔가를 만들어보려는 혁신성이나 도전 성향이 없어진 지 오래됐다. 바이오 산업은 제조업 마인드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바이오약품 복제약 제조, SK는 신약 위탁생산(CMO)에 주력하는 수준이다.

-국내 벤처 의사·약사들이 창업하고 의약품 원천 물질을 찾아내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실험에 도전하고 있는데.

△그중에 3차 임상 실험을 통과한 곳이 하나도 없다. 삼성이 바이엘 같은 글로벌 제약사를 인수해 수많은 우리나라 바이오 벤처 원천 물질을 공급받아 승부를 거는 게 나았을 것이다. 위험한 길 대신 편한 길을 가는 게 우리나라 대기업의 마인드이다. 글로벌 시장도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대규모 자본과 기술력을 보유한 1등만 생존하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빅테크에 비해 자본이 적은 데다 필요한 기술도 확보하지 못한 우리 대기업들이 경쟁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미국이 신성장 동력을 키우는 데 성공한 이유는.

△자본시장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워낙 혁신 기업들이 많이 나오는 데다 리스크가 커도 n분의 1씩 투자한 후 하나에서만 대박이 터지면 성공하니 빅테크들이 과감하게 투자한다. 민간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한국과 다른 나라들은 그게 안 돼 있으니 관 주도로 갈 수밖에 없다.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정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의 성공 투자 모형이 대표적이다.

-대만은 어떻게 TSMC를 성공시켰나.

△정부가 50%의 자본을 대고 네덜란드 대기업 필립스와 대만 부자들의 돈을 보태 반도체 제조사를 출범시키면서 전권을 전문가인 장중머우에게 맡겼다. 그 사람을 찾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박태준이라는 걸출한 인재에게 맡겨 성공한 포항제철의 모델과 유사하다. 일부러 필립스를 데려와 정치적인 외압과 인사 개입을 다 막아줬다.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성을 지킬 수 있어 성공했다.

-우리도 정부와 민간이 잘 협력하면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보는가.

△민관이 같이 가야 할 산업이 있고 민간에 맡겨야 할 산업이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배터리 기술은 우수했는데 관이 공급망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기업 경영이 창업 3세로 넘어가면서 창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유럽의 대기업의 경영은 사촌까지 넓혀 경쟁시키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넘겨준다. 고위험, 대규모 자본, 첨단 기술이 함께하는 투자를 하려다 보니 주저했고 그러다 보니 민간에서 혁신하고 신성장 동력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러면 관이라도 주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빅테크 5대 기업 중 오래된 회사는 애플뿐일 정도로 새로운 대기업들이 계속 부상한다.

-미국에서는 성장 기업의 교체가 활발한데.

△미국 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S&P 인덱스 기업의 40~50%가량이 상장된 뒤 20년 안에 상장폐지됐지만 인덱스는 연평균 약 10%가량의 수익률을 냈다. 엔비디아처럼 새로운 대기업이 꾸준히 등장해 성장을 주도한 것이다. 그래서 인덱스에 투자하라는 얘기가 나왔다. 한국에서도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치고 올라가 기존 대기업들을 능가하는 기업들이 나타나도록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자본시장의 생태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미국의 벤처기업은 90%가량이 인수합병(M&A)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90%가량이 코스닥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한다. 미국 빅테크들은 최고의 석박사 전문가를 거느리고 있어도 야생에서 죽기 살기로 나서는 벤처의 혁신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벤처를 인수하며 혁신한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은 벤처기업 인수는커녕 그들의 기술을 탈취해왔다. 이런 불공정에 엄청난 페널티를 부과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생태계가 무력해졌다. 벤처기업들은 독자적으로 커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는 것에 매달렸다. 대기업들이 옥석 가리기를 해줬어야 했는데 개인투자자들이 부담하다 보니 코스닥 시장만 부실해졌다. 중소기업·벤처·중견기업들 대부분이 대기업으로 키울 생각이 없다는 점도 큰 문제다.



-중소·중견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기업이 되면 사주에 대한 규제를 포함해 대략 1만 개 정도의 새로운 규제를 받게 되는데 누가 대기업으로 키우려고 하겠는가. 참여연대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재벌 기업을 비판하면서도 이런 얘기는 하지 않는다. 기술 혁명 시대에 유럽도 헤매고 있지만 유럽은 관광 자원이라도 갖고 있다. 혁신 과정에서 불거지는 사고에 과도한 책임을 묻는 풍토도 문제가 있다.

-혁신을 가로막는 문화로 어떤 게 있는가.

△세계에서 혁신으로 성장하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밖에 없다. 두 나라는 신기술에 따르는 부작용을 잘 소화하고 있다. 미국은 자율주행 등 신기술과 관련된 사망 사고가 나면 손해배상으로 해소할 수 있게 돼 있다. 중국은 국가의 성장을 위한 희생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게 만들어놨다. 우리나라는 사고가 나면 최고위직까지 책임을 지게 하는 문화가 거의 굳혀졌다. 과도하게 책임을 지우는 문화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는 쉽지 않다. 구조조정이 잘 안 되고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주식이 저평가되는 원인도 성장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주식이 왜 저평가돼 있는 건가.

△세계 주요 국가의 장기 주가지수 추이를 보면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가 최근 20여 년 동안 크게 상승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다. 한미 기업을 비교해보면 자산 가치는 별 차이가 없는데 성장 가치에서 한국이 매우 낮다.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고 배당을 많이 안 해서 문제가 된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결정적인 원인은 기업의 성장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 있다.

안동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오승현 기자


-자본시장에는 또 어떤 문제가 있나.

△상장 주식이 너무 많다는 점도 문제다. 경제 규모에 비해 상장 주식 수가 아마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또 개인투자자가 한국에선 60%가량이지만 미국에선 20%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은 기관투자가들이 대부분 투자하는 시장이다. 우리나라도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 육성 정책을 펼쳤지만 펀드를 판매하는 덩치 큰 은행과 증권사들의 위세에 눌려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장기 투자자가 많지 않고 시장 변화에 민감한 개인 투자 중심의 시장이 되다 보니 주가가 올라갈 수 없다.

-대만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가.

△대만은 당초 중소기업 위주로 경제성장을 추구하다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거의 한국 밑에 있을 정도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 대기업 TSMC에 힘입어 우리와 우위를 다투고 있다. 우리 경제성장을 이끈 것도 삼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선도 기업 1~2개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다는 얘기다.

-신성장 동력 육성을 위해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 절실해 보인다.

△미국에서도 국가주의를 내세워 국가가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을 키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서 민관이 협력해 제대로 된 산업 2~3개의 씨를 뿌려놔야 한다. 실패할 가능성은 높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정말로 훌륭한 전문가를 찾아 맡기고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정부가 최근 인공지능(AI) 육성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데.

△‘소버린(Sovereign) AI’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것도 내수용에 불과하다. AI 본류보다는 데이터센터 냉각 기술, 의료기기 등 AI 주변부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경쟁 우위를 가진 것을 찾아내야 한다.

-인재 양성을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면.

△지식산업 시대에는 제일 필요한 게 고급 인력이다. 미국에서 혁신이 활발한 이유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한국계 교수들이 꽤 많지만 이들은 국내 대학에 자리가 생겨도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의 연봉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민간기업과의 겸직을 허용해 미국에서 줌으로라도 가르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신성장동력 개발을 위해 민관이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가.

△관이 나서서 제도적인 인프라를 바꿔줘야 한다. 결국 모든 것은 인센티브의 문제이다. 올라갈수록 간섭과 규제, 정치적 문제까지 노출되면 누가 기업을 키우려 하겠는가. 인재 육성도 마찬가지다. 인센티브 시스템은 만들어주지 않고 옥죄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안 된다. 우리 경제도 거의 막판까지 왔다.

◆He is…

1964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고려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경영대학에서 교수를 지내고 고려대 경영대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부로 옮겨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의 위원으로 활동했고 자본시장연구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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