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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처럼 '생전 상속설계' 는다…유언대용신탁 2년새 58% 증가[상속전쟁]

<중> 유언장 뉴노멀 시대

美 55세 이상 45%가 유언장 보유

젊은층 작성도 4년새 50%나 증가

佛은 1971년부터 국가망서 관리

"상속 둘러싼 분쟁 미리 차단하자"

韓도 유언장 공증·신탁 계약 늘어

사진=이미지투데이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70대 부부는 얼마 전 아들과의 인연을 스스로 끊었다. 아들이 내연녀의 요구에 따라 부모의 집을 넘기려 한 데 이어 이를 막으려는 부모에게 청부 폭력까지 시도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부부는 평소 우려하던 상황에 대비해 공증 유언장을 미리 준비했다. 사후에 아들의 상속 주장으로 인한 법적 분쟁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유언장 등을 통해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미리 차단하려는 ‘생전 설계’가 국내에서도 상속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유언장뿐 아니라 신탁과 증여 등을 활용해 사후가 아닌 생전 단계에서 분쟁의 씨앗을 걷어내려는 수요도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30일 법무부의 ‘2025 법무연감’에 따르면 전체 공증 사무 처리 건수는 2015년 375만 건에서 2024년 200만 건으로 47%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위임장이나 계약서 등 일반 공증이 감소한 영향이다. 반면 유언 공증은 상속 갈등 증가와 맞물려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라는 것이 법조계의 전언이다. 법제연구원은 지난해 12월 ‘공증제도 활용범위 확대 방안’ 보고서에서 “유언 공증은 작성자의 진짜 의사와 판단 능력을 공증인이 직접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전자서명으로는 대체되기 어렵고 앞으로도 공증 수요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유언장을 대신하는 금융권의 유언 대용 신탁 규모 역시 2년 만에 58%가 증가했다.

해외에서는 유언장이 보편적 생전 설계 수단으로 정착돼 있다. 미국의 시니어 케어 정보 플랫폼 ‘케어링’이 2024년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미국인의 약 45%가 유언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미국 47개 주에서는 원격 전자 공증이 허용되며 일부 주는 영상통화를 통한 유언장 공증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유언장이 상속 분쟁을 구조적으로 예방하는 장치로 정착되면서 작성과 공증 절차까지 모두 간소화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젊은 층의 유언장 작성에 대한 인식 변화도 뚜렷하다. 같은 조사에서 18~34세의 유언장 보유율은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20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후 돌봄 지정’을 유언장에 포함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비트코인 등 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고민도 등장했다. 여기에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가까운 지인이나 단체에 재산을 남기려는 수요도 많아졌다. 특히 팬데믹 이후에는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유언장을 통해 자신의 뜻을 미리 정리해두려는 이들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프랑스는 법적 제도 차원에서 유언장을 국가가 직접 공적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다. 1971년부터 ‘국립 유언 등록소(FCDDV)’를 운영해 유언장을 국가망에 등록할 수 있도록 했으며 2020년 기준 등록 건수는 1800만 건을 넘어섰다. 사망 시 법원이 이를 즉시 조회할 수 있어 유언장의 존재를 두고 가족 간에 다툴 필요 없이 분쟁 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다. 유언장이 단순한 사적 문서를 넘어 공공질서 유지의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유언장 외에 신탁과 증여를 활용한 생전 설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응교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상속은 결국 문서와 증거의 문제”라며 “사망 이후 갈등이 시작되는 구조인 만큼 생전에 자산의 흐름과 분배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최근 각광받는 방식은 유언 대용 신탁이다. 유언장을 대신해 생전 신탁계약으로 자산의 운용 방식, 수익자, 분배 조건 등을 미리 정해두고 사망 후 자동으로 집행되도록 하는 구조다. 유언 대용 신탁은 활용 목적에 따라 일반형 외에도 특정인에게 조건부로 자산을 이전하는 제한형, 치매 등 의사능력 상실에 대비한 후견형 등 다양한 유형으로 구분된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60대 여성 김 모 씨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그리고 재혼한 배우자의 자녀 간 상속 분쟁을 우려해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김 씨는 이미 유언장을 써둔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사망한 뒤 유산을 둘러싼 가족 간 다툼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생전에 자녀와 배우자와 상의한 뒤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자산의 향방을 본인이 직접 결정하고 그 실행까지 확실히 해두기 위한 선택이었다.

유언 대용 신탁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유언 대용 신탁 상품 잔액은 2023년 1분기(2조 3000억 원)에서 올 1분기 3조 6420억 원으로 약 58% 급증했다. 이는 신탁이 고액 자산가의 전유물에서 중산층 고령자들의 재산 설계 수단으로 확산되고 있는 흐름을 보여준다.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김태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유언장은 사망 이후에도 유효성이나 진정성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신탁은 생전 계약으로 실행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갈등을 구조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며 “자산 소유자가 판단 능력이 있을 때 스스로 향후의 흐름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탁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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