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대상포진에 걸릴 정도로 너무 힘들어 합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노동위의 업무 부하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기존 업무에 더해 ‘직장 내 괴롭힘’처럼 새로운 유형의 노사 갈등이 노동위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이라면 업무를 줄이든지 직원을 늘려 업무를 나누거나 직원 보상을 늘리면 된다. 하지만 국가기관인 노동위는 이마저 쉽지 않다. 예산과 증원 권한은 노동위가 아니라 국회와 고용노동부에 있다.
고용부가 ‘노동 경찰’이라면 노동위는 ‘노동 의사’다. 노동위는 노·사·공익 3자로 구성된 행정기관으로서 노동분쟁에 대해 조정과 판정을 한다. 각 지역에 있는 13개 지방노동위는 법원보다 신속하게 노동분쟁을 막고 해결해왔다. 현재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해 선악적 판단이 불가능한 노동 현장에서는 갈등을 빠르게 치유할 수 있는 ‘노동 의사’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노동위는 그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갈등 해결 업무를 도맡고 있다. 지난해 노동위 사건은 약 2만 4000건으로 2021년과 비교하면 36%나 뛰었다. 하지만 조사관 정원은 2021년 248명에서 지난해 246명으로 되레 2명이 줄었다. 전체 조사관은 197명인데 조사관 1명이 맡은 사건 수는 평균 97건이다. 3년 전 71건과 비교하면 37%나 뛰었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노동위 직원들은 인력 증원은 기대조차 접었다고 한다. 국회와 정부가 노동위 예산을 외면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이다. 1인당 5만 원인 조사관 활동비라도 인상해달라고 읍소하는 직원들이 안쓰러워 보인다. 이들의 활동비는 유사한 업무를 하는 고용부 근로감독관(월 25만 원)과 비교하면 5분의 1밖에 안 된다.
직원들은 사실상 ‘번아웃’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A지방노동위는 47명의 심판·조정 업무 사무관 중 7명이나 병가와 휴직 상태다. A지방노동위는 물론 다른 지방노동위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쓰러지는 직원’은 다른 지방노동위에서도 속출할 것 같다. 노동위가 지난해 3월 직원 설문을 한 결과 34%가 “업무량 증가로 우울증·트라우마 등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고 33%는 “노동위 근무를 원하거나 추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노동 공약에 맞춰 근로자성 판단 등 노동위 역할을 크게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노동위의 현실은 업무 확대는커녕 기존 업무도 버거워 보인다. 노동위만의 어려움이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상담 근로자들은 저임금, 과업무, 악성 민원을 견디지 못해 30일 전면 파업을 예고했다. 직원들 상당수는 악성 민원으로 우울증까지 겪고 있다고 한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 존중 정부’라는 구호 속에 출범했다. ‘말뿐인 친(親)노동’이라는 오해를 받기 싫다면 정부기관부터 노동 존중이 이뤄지고 있는지 살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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