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세계 바둑 최강자 이세돌 9단에게 4대 1로 승리하며 인류를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소설가 장강명은 ‘소설가가 본 알파고’라는 칼럼을 제안받았지만 고사했다고 한다. 사건의 중요성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직은 바둑계만의 일이라는 막연함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6년 뒤인 2022년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까지 만드는 AI는 예술과 창작의 영역까지 위협하고 있다. 아직은 인간의 글과 그림이 낫다는 평가를 받지만 작가는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본다. 당장 내일이라도 인간 소설가를 압도하는 AI가 등장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과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품게 된 것이다.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작가는 다시 바둑계로 향했다.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AI 이후의 세계를 먼저 경험한 전·현직 프로 기사 29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만나 직접 인터뷰했다. 즉 논픽션 ‘먼저 온 미래’는 2016년 이후 9년 여 만에 도착한 ‘소설가가 본 알파고’인 셈이다.
책은 인간을 완전히 뛰어넘는 ‘기계 바둑의 신’이 등장한 이후 바둑계가 어떤 충격과 혼란을 겪었고 또 어떻게 적응해왔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본다. 짧게 요약하자면 바둑계는 AI와 공존할 것을 강제받는 세계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통상 바둑은 정답이 없는 무한한 선택지 속에서 각자의 창의적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한 수마다 승률을 계산해내는 신(AI)의 존재는 바둑을 정답이 있는 세계로 바꾸어 놓았다. AI 바둑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자는 승리하고 그렇지 못한 기사들은 패배하게 된 것이다.
수십 년간 헌신해 배워온 바둑이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기사들이 느낀 충격과 무력감은 우리의 막연한 상상 그 이상이었다. 모든 게 다 무너진 것 같다는 고백이 이어지고 심지어 일부는 아예 바둑계를 떠났다. 작가는 현재 AI에 대한 인류의 악몽은 크게 인간에 대항하는 터미네이터의 등장과 일자리 박탈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되지만 “터미네이터를 막고 일자리를 지켜도 어떤 인간적 가치들은 그 과정에서 부서질 것”이라고 짚는다.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둑에 늦게 입문해 초반 감각이 부족하거나 큰 정보 격차로 어려움을 겪었던 프로 기사들은 ‘AI 가정교사’의 등장과 함께 노력만으로 승률을 높일 수 있는 ‘공평한 세계’가 열렸다고 반긴다. 그러나 어떤 세계가 더 올바른가를 떠나 단 하나 확실한 건 어떤 업계든 AI가 도입되고 일단 변화가 시작된다면 이를 멈추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규칙은 바뀔 테지만 인류 간의 경쟁은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 아직 정답을 찾지 못한 이 심오한 문제 앞에서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때다.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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