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둘러 증산에 나서라”며 자국의 원유 업계를 압박했다. 미국의 개입으로 이란-이스라엘 사태가 최고조로 격화하면서 국제유가가 일시적으로 급등하자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긴급 조치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미국 원유 업계가 생산 확대를 꺼리는 궁극적인 이유가 트럼프 행정부의 저유가 유도 정책인 만큼 쉽게 증산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실제로 이란과 이스라엘의 휴전 발표로 유가 급등은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현지 시간) 소셜네트워크 트루스소셜에 “모두 유가를 낮추라. 내가 지켜보고 있다”면서 “여러분은 적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미국) 에너지부는 ‘드릴, 베이비, 드릴’(원유 생산 확대)을 지금 당장 시행하라”고 강조했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원유 업계에 서둘러 생산을 늘릴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고조에 달한 중동 긴장에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가격이 한때 배럴 당 80달러를 넘어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자 황급히 유가 안정 조치를 유도했다는 얘기다. 당시는 미국에 대한 보복을 천명한 이란 의회가 세계 해상 원유 3분의 1, 액화천연가스(LNG)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한 직후이기도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유가가 최고 13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긴박함은 약 반나절 후, 트럼프 대통령이 역시 트루스소셜에 “이란과 이스라엘이 ‘완전한 휴전’에 합의했다”고 발표하며 급속도로 해소됐다. 이날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7% 이상 급락해 거래를 마쳤고, 이후 이스라엘과 이란의 휴전 관련 발언과 조치들에 반응하면서 60달러 대로 하락 폭을 더욱 키웠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증산 압박에 미국 원유 업계가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셰일 업계는 관세 정책과 글로벌 수요 감소, 원유 공급 과잉 우려 등 여파에 따른 유가 하락으로 오히려 원유 생산을 축소해왔다. 주요 셰일 오일 생산지인 미국 퍼미안 분지 내에서 가동되는 시추기 수는 지난해 연말 304개에서 이달 20일 현재 269개로 11.5% 가량 감소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내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2020~2021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란-이스라엘 사태가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급등했던 유가가 다시 진정세에 접어든 것도 증산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휴전 발표 이후에도 양국이 공격을 주고 받으며 ‘불안한 휴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이 거론됐던 수준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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