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인내심이 필요했던 하루였어요. 이런 까다로운 조건에서는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샷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전부였어요.”
섭씨 34도의 무더위는 체력을 갉아먹었고 최대 초속 13m의 강풍은 샷 집중력을 흔들어 놓았다. 체력과 집중력의 시험장이 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총상금 1200만 달러)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은 호주 동포 이민지(29·하나금융그룹)였다.
이민지는 23일(한국 시간) 미국 텍사스주 프리스코의 필즈랜치 이스트 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5개를 묶어 2오버파 74타를 쳤다. 합계 4언더파 284타를 적어낸 이민지는 1언더파 2위 그룹의 교포 오스턴 김(미국)과 짠네티 완나센(태국)을 3타 차로 넉넉하게 따돌리고 정상에 섰다. 우승 상금 180만 달러(약 25억 원)를 받아 상금 랭킹 1위(261만 124달러)로 올라섰다.
2023년 10월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 뒤 20개월 만에 올린 투어 11승째이고 통산 세 번째 메이저 트로피다. 2021년 에비앙 챔피언십과 2022년 US 여자 오픈을 제패한 이민지는 8월 AIG 여자 오픈 또는 내년 셰브런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5대 메이저 중 4개 우승)을 완성한다.
이민지와 같은 교포 선수인 리디아 고(뉴질랜드)도 커리어 그랜드슬램까지 1승(US 여자 오픈 혹은 KPMG 여자 PGA 챔피언십)만을 남겨 놓고 있어 절친한 둘 중 누가 먼저 대기록을 달성할지도 관심이다.
지노 티띠꾼(태국)에 4타 앞선 선두로 출발한 이민지는 무더위와 강한 바람에 초반 고전했다. 첫 6개 홀에서 보기만 3개를 남기는 등 전반에 2타를 잃었다. 후반에는 버디 2개와 보기 2개로 더는 타수를 잃지 않았다. 메이저 챔피언이 되려면 결국 최종일 후반 9홀에 강해야 한다는 말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14번(파5)부터 두 홀 연속 버디가 결정타였다. 세 번째 샷을 핀 3m에 떨어뜨려 버디를 잡은 이민지는 235야드의 짧은 파4인 15번 홀에서 티샷을 그린 옆으로 보낸 뒤 두 번째 샷을 2m 안쪽에 붙여 또 1타를 줄였다. 이제 4타 차 여유가 생겼고 16번 홀(파4) 보기는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티띠꾼은 3타를 잃고 밀려났고 오스턴 김과 완나센이 4타씩 줄이며 나름 맹추격했지만 승부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티띠꾼은 이와이 치사토(일본)와 공동 4위(1오버파)에 자리했다.
2015년 투어에 데뷔한 이민지는 지난해 슬럼프 조짐을 보였다. 데뷔 후 처음으로 상금 랭킹이 10위권 밖으로 벗어나 43위에 그친 것이다. 그러는 사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뛰는 동생 이민우(호주)가 올 3월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를 꺾고 휴스턴 오픈에서 생애 첫 승을 달성하는 등 더 큰 관심을 받았다. 동생의 활약이 자극이 됐는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동생으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받은 이민지는 “(이)민우는 어디서든 제 소식을 챙긴다. 성격은 정반대지만 서로 자극이 된다. 나는 루틴과 안정, 민우는 자유와 창의성을 중시한다”고 했다.
이민지 부활의 원동력으로 올 시즌 개막전부터 쓰는 브룸스틱(대빗자루) 퍼터가 꼽힌다. 이민지는 “브룸스틱 퍼터를 쓰면서 손동작이 줄어들고 훨씬 자유로워졌다. 과도한 생각도 덜 수 있었고 그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나흘간 라운드당 퍼트 수가 28.2개에 불과했다. 이민지는 “언젠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루고 싶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 그게 내가 골프를 시작한 이유이자 궁극적인 목표”라고도 했다.
최혜진은 버디 2개와 보기 4개로 2오버파 74타를 쳐 공동 8위(3오버파)에 올랐다. 올 시즌 메이저 3개 대회에서 모두 톱10 성적을 낸 것이다. 더불어 최근 4개 대회 연속 톱10도 이어갔다. 이소미도 8위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표로 나간 황유민과 방신실은 각각 공동 19위(6오버파), 공동 23위(7오버파)의 성적을 거뒀다. 둘은 각각 2억 3000만 원, 1억 5000만 원의 짭짤한 상금 수입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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