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히로야 전 일본 총무상이 2014년 ‘성장을 이어가는 21세기를 위하여: 저출산 극복을 위한 지방활성화 전략’ 보고서에서 ‘지방소멸’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 보고서에는 2040년에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에 가까운 896개 지역이 소멸할 것으로 전망해 일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를 겪었으며 청년층의 대도시 유입이 가속화돼 수도권의 인구 집중과 지방 공동화가 심화됐다.
대한민국도 지방소멸은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닌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에 처음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초과하는 ‘데드크로스’를 경험했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소멸위험지수에 따르면 228개 시군구 중 절반이 넘는 130곳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는 89개 시군구를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해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방소멸은 지역경제 활력 저하, 산업 기반 붕괴 및 지역 인프라 악화 등 지역의 각종 경제 및 사회문제를 불러온다. 중앙정부 및 지자체 등은 지방소멸을 방지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광역권 구성, 지방재정·자치권한 확대, 지역 대표산업 육성 등의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정책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시각각 변화하는 지역경제 상황에 대한 신속한 진단이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적시에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내총생산(GRDP), 즉 지역 GDP 통계는 지역경제 전반을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지표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간 주기로 작성하고 있으며 익년도 12월이 돼서야 공표돼 시의성이 요구되는 지역경제 정책 수립에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지역 GDP는 지역경제의 체온과 같다. 그 체온을 1년에 한 번, 그것도 1년 후에 확인한다면 효과적인 처방은 불가능하다. 이에 정부는 보다 신속하고 종합적인 지역경제 동향을 파악하고 정책적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2023년에 분기 GRDP 개발에 착수했으며 이달 26일 그 결과를 처음으로 공개한다.
이를 통해 5대 광역권 및 17개 시도별 분기 성장률을 해당 분기 종료 후 90일 이내에 제공할 수 있게 되며 연간 성장률도 기존보다 9개월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분기별 GRDP 발표는 단순한 통계 공표 주기 단축이 아닌 정책의 시계를 바꾸는 구조적 전환으로 중앙정부가 지역경제의 실시간 흐름을 감지하며 정책을 설계할 수 있는 주춧돌이다. 이미 전국 단위로 발표하고 있는 분기별 GDP 속보치와 월별, 분기별 산업활동동향에 분기별 GRDP 공표까지 더해지면서 정책 대응 단위의 정교함과 속도를 모두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지역에 사람이 돌아오고 지역경제가 활력을 되찾게 하는 국가균형발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확성과 더불어 ‘속보성’을 갖춘 분기별 GRDP 통계를 통해 우리 경제의 근간인 ‘지역’을 더 자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지역 산업구조의 변화, 경기 침체의 징후 등이 보다 빨리 포착되면 그에 맞는 맞춤형 정책 대응이 가능하다. 분기별 GRDP 발표가 지방소멸이 아닌 ‘지역부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집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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