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열린 아시안 투어의 큰 대회에서 우승한 적 있지만 주무대인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대회 우승은 없던 옥태훈(27·금강주택)이 오래 남겨 놨던 숙제를 마쳤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전통의 골프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상금 3억 2000만 원과 2030년까지 유효한 5년짜리 투어 시드를 손에 넣었다.
옥태훈은 22일 경남 양산 에이원CC(파71)에서 끝난 제68회 KPGA 선수권(총상금 16억 원)에서 나흘 합계 20언더파 264타로 우승했다. 첫날 2타 차 선두에 나섰다가 2라운드부터 추격자 입장이 됐던 옥태훈은 캐나다 동포 신용구에게 2타 뒤진 공동 2위로 이날 최종 4라운드를 맞았다. 이글 1개와 버디 7개를 쓸어 담아 9언더파 62타를 적은 결과 3타 차의 넉넉한 역전 우승에 골인했다.
2018년 데뷔한 KPGA 투어에서는 첫 번째 우승이다. 첫 우승을 최고 권위 대회에서, 그것도 기록적인 스코어와 함께 해냈다. 이 코스에서 열린 이 대회 기준으로 72홀 최소타다. 2017년 우승한 황중곤의 268타(20언더파)가 종전 기록. 이 대회 역사 전체로 봐도 대회 최소타 타이다. 스카이72(현 클럽72) 하늘코스에서 열렸던 2015년에 장동규가 264타(24언더파)를 기록했었다.
옥태훈은 올해 8개 출전 대회에서 2등 한 번, 3등 한 번, 4등 두 번, 5등 한 번 등으로 우승만 없는 고공비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드라이버 샷 거리가 평균 290야드로 50위권이지만 퍼트의 힘이 대단하다. 그린 적중 때 퍼트 수 부문에서 1.74개로 전체 2위(1위는 김비오). 이날도 퍼트 수 불과 24개에 원 퍼트로 끝낸 홀이 12개일 만큼 물샐 틈 없는 퍼트 감을 뽐냈다.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 2위와 상금 5위였던 옥태훈은 두 부문 모두 1위로 올라섰다.
옥태훈을 위해 준비된 하루 같았다. 3번 홀(파5)에서 72야드를 남기고 친 세 번째 샷이 쏙 들어갔다. 핀 뒤에 떨어진 뒤 백스핀이 강하게 걸린 볼은 홀이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 끌려가 똑 떨어졌다. 샷 이글로 선두와 1타 차. 6번 홀(파3)에서는 티샷이 오른쪽 러프로 갔는데 칩샷이 들어가 버렸다. 이 칩인 버디로 공동 선두를 꿰찬 옥태훈은 여세를 몰아 연속 버디로 전반에 2타 차 단독 선두로 달아났다. ‘오늘은 되는 날’이라는 확신에 더한 구름 갤러리의 탄성과 박수 속에 그는 6~9번 네 홀 연속 버디의 휘파람을 불었다.
퍼트가 잘 떨어져 주지 않은 3라운드 경기 후 “다른 선수들 없고 나 혼자만 있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옥태훈은 이날 정말 그렇게 쳤다. 13번 홀(파5)에 앞 조 김민규가 이글을 터뜨리며 무섭게 쫓아왔지만 이 홀에서 옥태훈은 3온 1퍼트로 간단히 버디를 잡고 2위 그룹 김민규와 신용구를 3타 차로 내려다봤다. 14번 홀(파4)에서는 티샷이 페어웨이 벙커 턱 밑에 떨어져 위기를 맞나 했으나 두 번째 샷을 잘 붙여 버디를 잡고 4타 차로 쐐기를 박았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옥태훈은 2022년 8월 제주에서 열렸던 아시안 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 코리아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린 선수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후원하는 시리즈라 우승 상금이 3억 6000만 원이나 됐다. 당시 마지막 홀 버디로 김비오를 1타 차로 따돌렸던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여읜 아버지와 홀로 고생한 어머니를 언급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해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우승을 다투다 마지막 홀 티샷 아웃오브바운스(OB)로 땅을 쳤던 옥태훈이다. 이날 그는 “마지막 날 미끄러지고는 했던 지금까지와 다르고 싶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나는 될 놈이다’ 다짐하고 나왔다”며 “우승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더 꾸준한 선수이고 싶다”고 했다.
통산 3승의 김민규가 8타를 줄여 17언더파 2위에 올랐다. 1승의 신용구는 16언더파 3위, 첫 승에 도전했던 전재한이 15언더파 4위다. 최진호는 마지막 홀 16m 먼 거리 버디 퍼트를 넣어 11언더파 공동 7위에 올랐다. 미국에서 뛰는 김성현은 10언더파 공동 10위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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