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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아직도 문제는 석유야”[페트로-일렉트로]


<3줄 요약>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중동 위기가 고조되었지만, 국제 유가 상승은 예상보다 제한적입니다.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독립성을 확보하며 중동 원유에 덜 의존하게 되었고, 이는 미국의 중동 개입 방식에도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낮은 유가와 셰일 산업의 어려움은 미국의 전략에 부메랑이 될 수도 있어, 중장기적으로는 석유가 미국의 지렛대가 아닌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이란 사우스파르스 가스 유전이 이달 14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아 화염에 휩싸인 모습.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란과의 충돌은 미국의 참전이라는 또 다른 중대 국면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중동 전쟁은 국제유가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물론 세계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중대 변수이죠. 역사적으로 미국 중동 개입의 주요 배경이 석유 자원이었다는 평가도 있고요. 그런데, 미국의 이번 중동 개입은 이라크전 같은 이전 사례와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현재 유가 속에 그 차이가 담겨 있습니다.

중동 위기인데, 유가 ‘급등’은 아니다?


이스라엘-이란 충돌이 시작된 이후 국제유가는 상승세에 올라탔습니다. 교전 8일째인 20일(현지 시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 당 73.84달러, 브렌트유는 77.01달러에 거래를 마쳤는데요. WTI를 기준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처음 공습을 가한 이달 12일 종가(68.04 달러)보다 8.5%가량 높아졌습니다. 직전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영향과 공급 과잉 우려로 유가가 하향세였던 점을 떠올리면 상승 반전을 한 셈입니다.

유가가 오른 것은 맞지만, 예상보다 ‘파괴적’이지는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산유국 협의체인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가 석유 생산량을 전보다 더 늘린 것이 유가 상승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는 설명도 있고요. 이란이 이미 서방으로부터 원유 수출 제재를 받고 있다는 점, 이란의 핵심 수출 터미널인 하르그 섬은 아직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 등도 이번 사태의 유가 영향을 제한적으로 만드는 이유로 꼽힙니다.

그리고 또 하나 언급되는 요인이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1973년 이후 45년 만에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를 탈환한 뒤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죠. 글로벌 원유 시장이 중동의 공급에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가에서 중동이 미치는 영향력 자체가 이미 예전부터 크게 줄었다는 분석도 있는데요.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1970년대 중동발 석유 파동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례들, 즉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1990년), 미국 이라크 침공(2003년) 때 유가가 일시적으로 올랐다가 다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봤습니다. 물론 앞으로 이스라엘-이란 사태 추이에 따라 가격 급등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합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정리한 국제유가의 역사적 흐름. 출처: 세계경제포럼(WEF) 캡쳐




“美, 셰일 혁명으로 중동 원유에서 ‘독립’”


미국이 풍부한 원유를 쥐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단순히 유가 문제를 넘어, 중동 분쟁에서 미국의 운신의 폭을 크게 넓힌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미국이 중동 분쟁 격화로 인한 유가 급등을 걱정해가면서 행동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 미국 블룸버그의 에너지∙원자재 분야 전문 칼럼니스트인 하비에르 블라스는 “미국의 셰일 오일이 중동 원유로부터 미국을 독립하게 했다”고 분석했는데요. 실제로 미국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를 하루 27만 7000 배럴씩 구매했는데, 하루 구매량이 173만 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3년에 비해 80% 이상 뚝 떨어진 수준입니다. 블라스는 이달 초 미국이 사우디 원유를 단 한 배럴도 수입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임자들은 꿈도 꾸지 못할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이번 사태로 미국보다 중국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신호도 나오고 있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과 이란 간 핵 협상이 시작된 올 4월 이후 수입 원유 가운데 곧장 비축하는 물량을 점차 확대하고 있는데요. 서방 제재에 이란 원유 대부분을 사들이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원유 정제소. AFP연합뉴스


미국 석유, 지렛대 될까 부메랑 될까


미국 셰일 오일이 버티고 있으니, 이스라엘-이란 사태가 격화하더라도 유가가 급등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까요? 어쩌면 그 반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셰일 오일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전임 대통령보다 강한 수위로 이란에 ‘핵 무기 개발을 포기하라’고 압박하고 있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이 더 공격적으로 행동할수록,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이란이 절박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 또한 커진다고 전망했습니다. 세계 해상 원유 3분의 1 이상, 액화천연가스(LNG)는 5분의 1이 운송되는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이 봉쇄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유가가 최대 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고, 씨티은행은 이보다는 작지만 유가 상승 폭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조치 직전보다 15~20% 정도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중동 전쟁에도 유가 상승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미국의 셰일 산업에는 오히려 불리할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트럼프 행정부의 저유가 유도와 관세로 미국 셰일 업계는 시름이 큰 상황이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의 내년 원유 생산량이 올해 하루 1342만 배럴에서 내년 1337만 배럴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미국에서 원유 생산이 감소하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 때인 2020~2021년 이후 처음입니다. 미국 셰일 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전 연재 기사(▶관세發 '팬데믹 악몽'에 떠는 美 에너지 업계… "대형 프로젝트? 안 망하면 다행")에서 좀 더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셰일 오일이라는 미국의 ‘지렛대’가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만큼 튼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미국의 중동 개입 자신감을 높이는 것도, 시간이 지나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도 모두 ‘미국의 석유’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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