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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의 눈> 예술가는 언제 '예술가'가 되는가? [아트씽]

[새로운 예술가가 온다:김희영의 눈④]

사회적 고립된 창작자의 각성 이후

오디션을 통해 각성한 화가 최우열

각성하지만 말하지 못한 테레즈

사회적 존재로서 예술가의 조건

론 뮤익의 2013년작 '쇼핑하는 여인'(왼쪽)과 최우열의 2011년작 '기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한창인 호주 예술가 ‘론 뮤익(Ron Mueck): 시간의 입자’(7월13일까지)전에 전시 중인 ‘쇼핑하는 여인’은 극사실주의 조각으로, 백인 중년 여성의 고단한 삶과 육아의 무게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실물보다 작은 크기임에도 전시장에서 보면 강한 실재감을 준다. 무표정한 여성은 코트 안쪽으로 갓난아기를 안고 있으며, 손에는 장을 본 비닐봉지를 들고, 초췌한 표정은 삶의 피로가 짙게 묻어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 중인 론 뮤익의 '쇼핑하는 여인'


여기 아이를 안은 또 다른 여성이 있다. 그녀는 아기를 가슴에 업은 채 두 손을 모으고, 기도의 대상을 지친 눈으로 응시하고 있다. 아기는 잠에 빠졌다. 흐린 배경은 여성의 내면에 집중하게 만든다. 최우열이 2011년 그린 작품 ‘기도’는 섬세한 붓질로 모성을 고요한 분위기로 이끈다.

두 작품 모두 현실과 육아에 지친 여성을 다루지만 ‘쇼핑하는 여인’의 질끈 묶은 머리, 무표정한 얼굴, 불균형한 자세가 관객을 불편함과 연민으로 이끄는 반면 ‘기도’는 피곤에도 아이를 품은 손을 모은 어머니의 모습이 현실 너머 응시하는 어떤 희망으로 우리를 이끈다.

론 뮤익은 어머니의 고단한 현실을 극사실주의적으로 제시하고, 최우열은 그 현실 속에서 모성의 숭고함을 회화적으로 풀어내며 각기 다르게 관객을 상념과 연민으로 이끈다. 론 뮤익은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우열은 집 근처 서점의 부속 갤러리에서 최근 전시를 열었다.

최우열 '기도'


아티스트 오디션 프로그램 '화100'에서 우승한 최우열 /사진출처=MBN


지난해 상반기 방영된 미술 오디션 프로그램 ‘화100’의 우승자 최우열은 미술대학 2학년 즈음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림을 그만 두었다가 결혼을 통해 15년 만에 작업을 재개했다고 한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틈날 때 작업을 하면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작품에도 들었고, 드물게 개인전도 열던 그가 늦게나마 방송에 출연한 동기는 “그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였다.

막연히 참여한 오디션의 거듭되는 미션과 평가를 통해 그는 자신의 미적 태도와 사회적 메시지를 보다 더 분명히 해간다. 은둔의 창작자였던 최우열은 오디션을 통해 세상을 향한 자기 표현의 기회를 얻게 되고, 심사위원에게 자신을 설득하면서 이제 ‘사회적 존재인 예술가’로서 재기하고 또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클로드 밀러 감독의 2012년작 영화 '테레드 데케루'의 한 장면 /사진출처=cine21




최우열처럼 (방송을 통해) 각성했지만, 끝내 자기 자신을 말하지 못한 여성이 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소설 ‘테레즈 데케루’에서 주인공 테레즈는 감성적이고 지적인 인물이지만 1920년대 프랑스 상류사회의 보수적 질서와 부조리한 결혼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그러다 남편의 친구이자 자유분방한 사고의 ‘장 아제베도’와 만나면서 테레즈는 자신의 존재와 억압된 결혼생활에 의문을 갖게 된다. 이 각성의 결과로 남편을 독살하려 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나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어요.”라며 끝내 자신의 삶을 발언할 기회를 잃고 침묵한 채 이야기는 끝난다.

테레즈와 최우열, 이 둘은 장 아제베도 또는 시청자나 심사위원이라는 외부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재인식했다. 우리의 각성은 고립된 상태가 아닌 사회적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테레즈의 각성이 ‘자신은 말할 수 없음’을 깨달으며 고통 받는 내면의 성찰이라면 최우열의 그것은 ‘어떻게 내 의도를 말해야 주목받을 수 있는가’라는 예술가 자신의 정체성과 미학의 외부화에 대한 고민에 해당한다.

최우열 2008년작 '비'


여기서 질문. 예술가는 (그가 운영하는 용인 미술학원의 한 켠에서 시간 날 때마다 채워가는 캔버스에) 작업을 한다는 것만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승인받는 것인가?

테레즈와 최우열은 모두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했지만, 예술가로서 존재하려면 그 표현이 사회적으로 조응하는 언어와 형식을 갖추어야만 한다. 현대의 예술가는 ‘작업실에 처박혀 창작에 몰두하는 은둔의 존재’가 아니라 특정한 곳에서 전시하고, 당대 예술의 미학 담론에 포함되며,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승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우열은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감성적 작업으로 시청자를 뭉클하게 만들며 우승했지만, 그의 진정성은 미술계의 구조적 언어로 확장해나가는 숙제에 맞닥뜨렸다.

최우열의 2025년작 '새벽-오르다'


최우열이 ‘사회적 존재’로서 예술가를 유지하려면 예술가로서 정체성과 경력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끌어가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대미술계로의 진출만이 성공은 아니다. ‘오디션’이라는 각성의 기회를 통해 자신의 (진실을 유지하고) 작업을 발표할 기회를 다시 얻지 않았는가.

그의 개인전이 충남 공주의 갤러리 마주안에서 6월 22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운영하던 학원을 6월로 정리하고 전업화가로 나선다고 한다.



▶▶필자 김희영은 서울문화재단 융합예술팀장이다. 2010년부터 서울문화재단에 재직하며 금천예술공장 총괄매니저를 7년간 맡았다. 레지던시 스튜디오를 통한 예술가 지원,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 테크놀로지 기반 예술과 NFT기획이 전문 분야이며, 그가 금천예술공장에서 실현한 In-House Production 시스템은 2010년 이후 한국 테크놀로지 기반 예술 지원의 중요한 지표가 됐다. 그전에는 ‘미디어시티서울2000’, ‘세계도자기엑스포경기도2001’, ‘부산비엔날레2003~2005’ 등의 전시팀에서 일했고, 서울대에서 미술이론 석사, 미술경영 협동과정 박사를 취득했다. MBN의 전국민오디션 ‘화100’ 심사위원(2024), 국민대 행정대학원 박물관미술관학 전공 겸임교수(2020),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복지위원회 위원(2019~2021)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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