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업 지역 재개발 규제가 완화되면서 서울 서남권 아파트 정비사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최대 용적률이 400%까지 높아지고 복합개발이 허용되면서 수익성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아파트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16일 서울시가 운영하는 포털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공개된 자치구별 정비사업을 분석한 결과, 정비계획 수립 건수 기준으로 영등포구가 15건으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수립된 정비계획 69건 가운데 21.7%가 영등포 사업이다. 서울에서 추진되는 초기 정비사업 5건 중 1건은 영등포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비계획 수립은 정비 사업의 초기 단계다. 영등포구와 인접한 구로구에서도 4건의 정비계획이 수립돼 상위 7위에 이름을 올렸다.
영등포구와 구로구 등에서 재건축 등 정비사업 논의가 한창인 이유는 서남권 일대가 준공업 지역 규제 완화 대표 수혜지역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준공업지역은 1960~70년대 소비·제조 산업 중심지로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 서울에는 19.97㎢가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돼 있으며 이 중 82%가 서남권에 분포돼 있다. 영등포구(25.16%)가 가장 넓은 가운데 △구로구(21.01%) △금천구(20.64%) △강서구(14.62%) 등이 뒤를 이었다.
정비사업 용적률은 도시정비법과 시행령, 도시·주거환경기본계획에서 정한다. 국회가 2023년 6월 도시정비법을 개정해 재건축 용적률 완화 조항에서 ‘주거지역으로 한정한다’는 단서조항을 없애고, 그 해 12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상에 준공업지역을 포함했다. 이후 서울시가 2024년 9월 2030 도시·주거환경기본계획을 개정하면서 최대 250%였던 준공업지역 재건축 용적률을 400%까지 끌어올렸다. 올해 3월에는 서울시 도시계획 조례가 개정되면서 준공업지역 공동주택 건립을 위한 지구단위계획 수립 시에도 상한 용적률이 250%에서 400%까지 올라갔다.
대표적으로 영등포구는 준공업 지역 규제 완화를 반영해 양평동 신동아 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안을 다시 마련하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 계획안이 통과되면 용적률이 299.94%에서 399.2%로 높아져 49층 규모의 고층 주거단지로 개발된다. 총가구 수는 563가구에서 786가구로 늘어난다. 일반분양 물량도 12가구에서 80가구로 확대돼 조합원 부담이 줄게 됐다.
1982년 준공한 양평동 신동아 아파트는 2009년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설립했으나 조합원들의 참여도가 낮아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장기간 표류하던 사업은 지난해 서울시가 준공업지역 내 재건축 용적률을 최대 400%까지 허용하기로 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올해 4월에는 서울시 공동주택 재건축 사업 중 최초로 환경영향평가 협의 절차 면제를 받아 사업시행계획인가 기간이 2개월 이상 단축됐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양평동 신동아 아파트는 준공업지역 용적률 상승으로 분양 물량이 확대돼 조합원의 부담이 줄어든 대표 사례로 향후 다른 재개발·재건축 사업에도 긍정적인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행정력을 총동원해 주민 부담은 최소화하고, 재건축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총 824가구 규모인 구로구 신도림 미성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도 올해 3월부터 정비구역 지정 및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신청을 준비 중이다. 신통기획은 서울시가 정비계획 수립단계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정비구역 지정 기간을 5년에서 2년으로 줄여주는 제도다.
신도림 미성은 1989년 준공업지역에 지어진 노후 단지로 2023년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234%의 높은 용적률 탓에 주민들의 참여가 저조했다. 그러다가 올해 3월 서울시의 조례 개정에 따라 준공업지역에 부지 면적 3000㎡ 이상 공동주택을 건립할 경우 최대 용적률이 400%까지 높아지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2030년 이주를 시작해 2034년 입주하는 것이 목표다.
사업이 많이 진행된 재건축 사업들도 수혜를 기대하고 있다. 규제 완화에 청약이 흥행하고 주변 환경이 정비돼 투자 가치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한강 조망이 가능해 영등포구에서도 알짜 재건축으로 평가받는 당산동 ‘유원제일2차’가 대표적이다. 유원제일 2차는 유원건설이 1984년 준공한 단지로 지상 최고 13층, 5개 동, 410가구로 구성됐다. 용적률은 199%이며 전용면적 84·123·145㎡로 이뤄져 있다. 재건축으로 지하 3층~지상 49층, 7개 동, 703가구가 들어선다. 구청으로부터 사업시행 인가를 획득했으며 올 하반기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재건축 기대감이 커지면서 매매가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양평 신동아 전용면적 62㎡는 4월 15일 9억 3000만 원에 거래되면서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신도림 미성 전용면적 84㎡는 8억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당산 유원제일 2차 전용면적 85㎡가 16억 1000만 원(5월 27일), 124㎡는 18억 원(5월 29일)에 각각 거래되며 신고가를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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