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에 반발하는 시위가 8일째 지속되는 가운데 13일(현지시간) 해병대가 현장에 투입돼 민간인을 구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현역 군인에 의한 민간인 첫 구금 사례로 기록됐다.
태스크포스 51 사령관 스콧 셰먼 미 육군 소장은 이날 "약 200명의 해병대원이 이미 배치된 주방위군과 합동 작전을 개시했다"며 "해당 지역 보안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해병대는 LA 시내에서 24km 떨어진 윌셔 연방청사를 비롯한 연방 건물 보호 임무를 수행한다. 이 청사에는 연방경찰국(FBI), 재향군인부, 미국 여권국 사무실 등이 입주해 있다.
셰먼 소장은 "현재까지 해병대나 주방위군은 누구도 구금하지 않았으며 법 집행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로이터 통신은 해병대가 윌셔 연방 건물 앞에서 한 남성을 구금하는 장면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해병대원이 벤치를 넘어 정원을 가로질러 남성을 추격해 제압한 후 다른 해병이 가세했으며, 이 남성의 손을 케이블 타이로 묶은 후 약 2시간 뒤 국토안보부(DHS) 소속 인력에게 인계했다.
구금된 민간인은 27세 이민자이자 미 육군 참전 용사 마르코스 레아오로 확인됐다. 그는 건물 주변을 돌아가지 않기 위해 경계 테이프를 넘었고 제한 구역 진입을 이유로 구금됐다고 밝혔다. 포르투갈 및 앙골라계인 그는 미군 복무를 통해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재향군인부 사무실에 가려고 했는데 해병대가 자신을 시위자로 오인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군은 "특정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개인을 구금할 수 있으며 민간 법 집행 인력에게 안전하게 인계되는 즉시 종료된다"고 해명했다.
미군 병력의 국내 시위 현장 투입은 1992년 로드니 킹 폭행 사건 관련 LA 폭동 이후 처음으로 매우 이례적이다. 당시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대통령에게 군 지원을 요청했으나, 이번에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병력 투입에 반대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 지시로 해병대가 파견됐다. 해병대원 700명은 지난 9일 밤 LA에 도착해 현장 투입에 대비해왔다.
해병대 투입은 미국 연방 항소법원이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의 LA 투입을 일시적으로 허용한 다음날 이뤄졌다. 미국 제9 연방순회항소법원은 12일 주지사 동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방위군 배치는 불법적"이라는 1심 결정을 몇 시간 만에 일시 중지시키며 본안 심리가 진행될 때까지 임시적으로 대통령의 지휘권을 인정했다.
LA에 야간 통행금지가 내려진 지 3일째인 전날 총 49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33명은 해산 명령 불이행, 13명은 통행금지 위반 혐의다.
한편 14일 미 전역에서 예정된 '노 킹스'(No Kings)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시작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시위가 50개 모든 주에서 진행되며 시위 건수는 약 2000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인디애나주에서만 30건 넘는 시위가 예고되는 등 시골 지역부터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 등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미국 독립 혁명의 상징적 도시인 필라델피아가 이번 시위의 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미 육군 창설 250주년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을 맞아 군사 퍼레이드가 열리는 워싱턴DC는 시위에서 제외됐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퍼레이드 반대 시위에는 아주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시위는 인디비저블(Indivisible),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등이 주최했다. 이들 단체는 트럼프 1기 때에도 낙태권, 총기폭력 반대 시위를 조직한 바 있으며, 지난 4월 5일 트럼프 대통령이 의료와 교육, 사회보장 제도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개최한 '핸즈 오프!'(Hands Off!) 시위도 주도했다. 이들 단체는 이번 대규모 시위를 트럼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권위주의적 권한 남용에 맞서는 '저항의 날'로 선언했다.
당초 이민 단속으로 인한 LA 시위가 벌어지기 전부터 계획됐지만 LA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규모가 더 커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이번 '노 킹스' 시위를 언급하며 "나는 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승인받으려면 지옥을 건너야 한다. 우리는 전혀 왕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평화적 시위는 보장하면서도 폭력적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며 LA에 배치한 군병력을 계속 주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도 시위에 대비해 공공안전국(DPS) 요원 2000명 이상과 주방위군 병력 5000명 이상을 주 전역에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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