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인 이경규 씨에 대한 경찰 내사를 계기로 약물 운전의 위험성이 재차 주목받는 가운데 정신질환 치료제를 처방 받은 환자들이 빠르게 늘어나 지난해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 치료제 중 대다수는 복용 이후 잠이 쏟아지는 등 운전 능력을 저하시키는데다 약물 운전은 술·마약과 달리 사고 전 위험성 예측도, 사후 검증 및 처벌 과정도 까다로운 만큼 의료기관과 운전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13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2019~2024년 연도별 우울증·불안장애 진료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우울증 환자는 9만 3400명, 공황 등 불안장애 환자는 89만 6011명을 기록했다. 이는 5년 전인 2019년 동기(우울증 5만 6156명, 불안장애 50만 7902명)보다 각각 1.6~1.7배 늘어난 수준이자 6년래 최고치다. 같은 기간 약국의 처방 건수도 매년 상승 곡선을 그렸다. 우울증 약은 7만 4559건에서 16만 602건으로 115.4%, 불안장애 약 처방 건수는 29.8% 증가했다.
정신질환 약은 약국을 거치지 않고 원내조제·처방도 가능한 만큼 실제 처방 건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 통계가 현행법상 운전면허 결격사유에 해당되는 조현병 및 특정 우울증 의약품을 제외한 수치인 만큼 10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모두 합법적 운전이 가능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들이 처방약을 복용하다가 정상적인 운전이 어려운 상태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닐 경우 더욱 그 위험성을 자각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우울증과 불안장애(공황·광장공포·강박 등) 치료제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와 삼환계 항우울제다. 이 약들은 복용 시 졸음이나 주의력 저하, 어지럼증, 시야 흐림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닌 일반 약품이라 복약 지도서에도 ‘운전 금지’가 아닌 ‘운전 주의’ 정도만 표기된다. 약사 A(30) 씨는 “연령마다, 약물 배합 방식마다 복용에 따른 증상이 천차만별이고 극단적으로 되레 잠이 깨는 경우도 있다. 약물 대사가 환자에 따라 다른 만큼 처방 후 설명 과정에서 ‘절대 운전을 하지 말라’고 확언하기 어렵고 주의하라는 말 정도만 하는 편”이라면서 “그렇다 보니 안일하게 생각해서 반감기가 지나기도 전에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변수가 많아 ‘간이검사’ 절차도 없다 보니 처방약과 교통사고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도 술·마약보다 훨씬 까다롭다. 도로교통법 제45조 ‘과로한 때 등의 운전금지’는 운전자가 마약·대마 및 향정신성의약품, 그 밖에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것(부탄가스)의 영향 또는 ‘그 밖의 사유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일 때 운전을 금지한다. 법령에 구체적인 일반 약품명이 거론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운전자별 인지 능력, 비틀거림 등의 신체 상태, 의료진 소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상 운전 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 정신 건강 문제는 매년 악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정신 건강 문제를 겪은 국민의 비율은 2019년 60.7%에서 지난해 73.6%로 뛰었다. 이에 근본적인 정신 건강 정책 강화와 더불어 약물 운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철저히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처방 시 의료진이 더욱 자세하고 철저한 상담·고지를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현행법상 약물 운전 처벌에 대한 규정을 꼼꼼히 정비해 더욱 구체적·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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