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쭉 뻗은 매화나무 가지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곧게 뻗은 꼬리와 기세등등한 자세는 ‘군자의 꽃’ 매화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고고하다. 글씨와 그림에 두루 능해 ‘시서화 삼절’로 불렸던 조속(1595~1668)의 작품 ‘고매서작’은 16~17세기 유행한 ‘수묵 사의화조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유교 문화가 절정에 다다랐던 이 시기 조선의 사대부들은 일상 속 꽃과 새를 통해서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고결한 이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100여 년 후인 18세기 화조화의 풍경은 확 달라진다.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1676~1759)의 붓 끝에서 수박을 몰래 파먹는 들쥐 한 쌍과 참외밭의 개구리, 연보랏빛 겹국화와 나란히 앉은 검은 고양이가 등장한다. 하늘로 향했던 시선이 땅으로 내려오면서 꽃과 새들은 더 다정해지고 친근해졌다. 또 100여 년 후인 19세기로 넘어오면 화조화에 길상적인 의미가 더해진다. 장승업(1843~1897)의 화조도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꽃과 행복을 기원하는 길조 등이 화려한 색채로 묘사된다. 그림의 주된 소비층이 사대부에서 중인으로 넘어오면서 꽃과 새들이 세속적 욕망을 표현하는 소재로 변한 것이다.
조선 화조화는 이처럼 꽃과 새라는 소재는 같지만 그 의미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다. 이런 흥미로운 여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 ‘화조미감’이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조선 중기인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400년 동안 그려진 화조화 중 시대적 미감을 대표하는 37건 77점(보물 2건 10점 포함)을 선보인다. 백인산 부관장은 지난해 9월 개관 이후 첫 전시로 언뜻 평범하달 수 있는 화조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대중에 좀 더 가볍고 친숙하게 다가가는 전시를 지향하겠다는 뜻”이라며 “꽃의 화사함과 동물의 친숙함은 물론 화조화를 총괄하는 깊이까지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고고, 화조로 그려진 이상’에서는 조선 중기 문인들이 그린 수묵 화조화를 대거 만날 수 있다. 아버지 조속과 아들 조지운의 화조화를 나란히 내걸어 비교해보도록 전시한 점이 흥미롭다. 2부는 ‘시정, 자연과 시를 품다’는 주제로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이 펼쳐간 조선 화조화의 황금기를 조명한다. 3부 ‘탐미, 행복과 염원을 담다’는 19세기 장승업, 안중식, 조석진 등의 작품을 통해 길상적 의미와 장식성을 겸비한 말기 화조화를 소개한다.
전시의 백미는 정선의 ‘화훼영모화첩’이다. 미국 금융사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후원으로 2년 간의 수리·복원을 마친 후 처음 일반에 공개됐다. 꽃과 풀벌레, 새와 고양이 등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총 8장 낱장으로 보관돼 있었지만 복원을 위해 상세히 검토한 결과 화첩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벌레가 파먹은 흔적이나 색이 떨어져 나간 박락, 그림의 크기 등을 두루 고려한 결과다. 또 그림들의 충해가 두 장씩 마주 본 듯 닮은 꼴로 나타났고 그림 소재도 고양이와 쥐, 암탉과 수탉처럼 서로 연관돼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작품을 재배치, 원본에 가까운 분위기로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품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신사임당의 ‘초충도’와 보물로 지정된 이징의 ‘산수화조도첩’과 같은 공간에 함께 배치돼 관람객이 화조화의 변화를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다.
단원의 작품들도 특별 공간을 꾸려 소개한다. 김홍도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장 중앙에 연꽃 연못을 꾸미고 정면에는 ‘화조도 8폭병’을 펼쳤다.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노려보는 ‘황묘농접’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병진년화첩’과 ‘산수일품첩’ 등을 함께 전시해 만년의 단원이 완성한 화훼영모화 걸작들도 만나볼 수 있게 했다. 단풍이 곱게 물든 깊은 산 속 한 쌍의 장끼와 까투리가 서로 바라보는 풍경을 묘사한 ‘추림쌍치’, 꿩 한 쌍이 소리를 주고받는 풍경을 묘사한 ‘쌍치화명’ 등을 통해 꿩을 자주 그렸던 단원의 면모와 그의 필치가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8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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