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제임스 터렐이 2008년 이후 17년 만의 개인전으로 한국을 찾았다.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14일 개막하는 전시 ‘더 리턴’을 통해서다. 전시는 3층 규모의 페이스갤러리 전관에 걸쳐 펼쳐지며 터렐을 대표하는 대형 설치 작품 5점을 포함해 판화와 평면 등 총 25점이 공개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대형 설치 작업인 ‘더 웨지’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터렐의 대표 작업 ‘웨지워크(Wedgework)’의 최신작이자 페이스갤러리서울의 공간에 딱 맞게 특별 제작된 장소특정적 작업이다. 다양한 빛을 실제 벽면에 대각선으로 투사해 ‘빛의 벽’이라는 환상적 공간을 구축, 현실 공간의 물리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지각 경험을 하도록 이끈다. 투사된 빛의 모서리가 쐐기(wedge) 모양이라 ‘웨지워크’라 이름 붙여진 이 연작은 터렐이 개척한 ‘지각 예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은 정적인 빛의 경험을 넘어 총 20분에 걸친 미묘한 색의 변화도 보인다. 갤러리 측은 “색이 바뀌는 웨지워크 작업은 세계 세 번째이자 국내 최초”라고 설명했다.
전시 개막에 맞춰 10일 한국을 찾은 터렐은 “내가 가장 관심있는 것은 빛 그 자체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에게 빛은 어떤 사물을 비추는 것을 넘어 물리적 실체가 있는, 그 자체로 소중한 실제”라며 “실제 내 작품을 소유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이제 공간을 지나는 빛을 소유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간의 지각을 교란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혼란은 우리가 세계를 잘 인지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 한편 우리가 어떤 현실을 구축해가야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경험은 오늘날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터렐은 “오늘날 사이버 공간은 시야가 가려지고 감각이 제한된 상태와 유사하다”며 “무한한 공간에서 우리가 주변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그 너머의 새로운 지평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에서는 첨단 LED 기술로 계속 변화하는 빛의 평면을 구현해 무한한 깊이감을 환영처럼 연출하는 ‘글라스워크’ 시리즈도 총 4점 선보인다. 두 점의 대형 곡면 설치 작품과 원형, 마름모꼴 유리 구조물로 설치된 작품이 갤러리 곳곳에 자리 잡았다. 또 웨지워크의 색채 변화와 형식적 가능성을 탐구한 신작 판화 시리즈와 미국 애리조나 북부에 위치한 약 40만년 전 화산 분화구 내부에 천문학적 크기의 공간을 건설하기 위해 5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 ‘로든 크레이터’와 관련한 평면 작업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세계 5대 갤러리로 꼽히는 페이스갤러리의 설립 65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페이스갤러리는 올해 뉴욕, 런던, 제네바, 홍콩, 서울 등 세계 곳곳의 분점을 통해 오랫동안 긴밀히 협업해온 20세기 주요 작가들의 작업을 조망하는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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