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5일 전북 장수군에서 농수로를 막은 나뭇가지를 제거하던 80대 남성 A 씨는 작업 도중 2m 아래로 추락했다. 2일 고창군에서는 자동차공업사 주변의 잡초를 뽑던 80대 B 씨가 인근에 진입하던 28톤 탱크로리에 깔렸다. 이들은 모두 고령자의 소득을 보전해준다는 취지의 공공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다 사고를 당했다. 각각 머리와 다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사망 사고가 잇따르며 일선 현장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급격히 늘어난 사업 규모와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인력·예산이 사고를 반복시키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11일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실이 한국노인인력개발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 일자리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4036건으로 전년 대비 11.2% 늘었다. 2021년(2985건) 이후 2022년(3240건)과 2023년(3629건)을 거치며 매년 증가세다. 최근 4년간 누적 사망자는 102명에 달했다.
현장에서는 고령층 참가자들의 안전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여건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하나의 수행 기관이 너무 많은 일자리 관련 업무를 떠안기 때문이다. 시니어클럽이나 복지관들은 수도권에서 통상 2000명, 지방의 경우 많게는 4000명분의 사업을 수행한다. 이들 기관의 인력은 대부분 30명 안팎으로 구성돼 있다. 임원과 계약직을 제외하고 나면 정원의 3분의 1에 불과한 정규 직원 1명이 200명분의 일자리를 맡는 셈이다.
문제는 그나마도 이들의 업무 대부분이 운영·관리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수행기관은 전문 안전관리 인력 없이 소수의 직원이 여러 업무를 겸임해왔다. 안전 전문인력을 채용할 예산 지원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신우철 고양시니어클럽 관장은 “노인 일자리 수행기관들은 수익 사업을 하는 기업이 아니라 자력으로 관련 예산과 인력을 감당할 방법이 없다”면서 “사실상 책임이 오롯이 사회복지시설에 넘겨져 있었다”고 했다. 실제 사고 발생 시 수행기관이 법적 책임을 떠안는 사례도 이어졌다.
이런 현실은 노인 일자리 수가 가파르게 급증한 점과 대비된다. 정부는 올해 역대 최대인 약 110만 명 규모 노인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2004년 3만 5000명으로 규모로 출발한 노인 일자리 사업은 국민연금 미가입자의 노후를 보장해줄 수 있다는 기능이 확인되며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안전 문제를 인지해 2026년도부터는 시행 기관별로 최소 1명씩의 전담 관리 인력을 두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정 1개소가 아니라 지역사회 곳곳에 흩어져 작업하는 노인 인력의 안전을 극소수 인원만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참여자 선발 기준을 정교하게 다듬고 일자리 구조 전반도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체계적 관리 없이 노년층에게 외부 작업을 맡기는 현재의 공공일자리 구조가 본질적인 사각지대를 안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순돌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자라고 해서 모두 같은 조건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라며 “안전 전담 인력 배치와 함께 참여자 선발 시 신체적 상태 등을 고려하는 기준도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노인 일자리를 단순한 소득 보전 수단이 아닌 안전한 사회 참여의 관점에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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