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체 퇴직자가 군사 기술 관련 영업비밀 2건을 외장하드에 보관하다가 적발됐다. 하지만 법원의 선고는 벌금 500만 원이었다. 외부 유출 정황이 없고 장기간 단순 보관에 그쳤다는 이유였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방산기술이지만 법원은 사실상 미수에 그쳤다고 판단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기술유출을 시도했다가 적발된 미수범 13명이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방위산업기술 보호법' 위반 사건 중 2024년 7월 1일 이후 선고된 판결 24건을 분석한 결과다. 일부는 양형 기준 강화 전에 기소된 사건이며, 사법정보공개포털에 공개된 대법원 확정 전 사건들이다. 법조계에서는 양형기준 강화에도 불구하고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가벼운 처벌이 반복되고 있어 국가 핵심기술 보호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원지법은 지난해 11월 반도체·배터리 기술 자료를 보관한 채 경쟁사로 이직한 직원 2명에게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들은 회사 서버에서 수십 건의 설계 자료를 내려받아 이메일과 외장형 저장장치로 전송했지만, 피해 규모가 수치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형을 면했다.
화장품 소재 원료 분석표 87건을 USB에 담아 반출한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수원지법은 "유출되기 전 회수돼 실질적 피해가 없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사례도 있었다. 올해 2월 국방기술품질원 연구용역에 참여한 예비역 출신들이 군사기밀을 포함한 연구 결과물을 무단 저장한 사건에서도 전원 집행유예를 받았다. 일부는 동종 전과가 있었음에도 실형을 피했다.
현행 양형 기준은 지난해 7월 강화됐지만 기수범(범죄가 완성된 경우)을 기준으로 형량을 정하고 있다. 기술이 실제로 외부에 유출돼 피해가 발생했을 때만 강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어, 유출을 시도하다 적발된 경우에는 형량을 무겁게 정하기 어려운 구조다.
문제는 기술유출 범죄가 해마다 조직화·지능화되면서 적발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피해 규모 산출과 입증 책임이 수사기관과 피해 기업에 있어 실형 선고를 받기 쉽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결과가 없으면 가볍게 끝난다"는 판례가 누적될 경우 기술보호 현장에서의 경각심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기업 자문 전문 변호사는 "기술유출은 시도만으로도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범죄"라며 "미수범에 대한 명확한 양형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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