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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국제 질서 재설계 경쟁 적극 참여해 강대국 발판 마련할 때”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李정부 과제는 선진국 면모 되찾고 부강국으로 도약

슈퍼파워 패권경쟁, 생존하려면 스스로 강대국 돼야

전체주의 국가 추종, 배타적 질서 편입은 패망의 길

강국 소프트웨어 갖추고 자유 시장질서 발전 외교를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는 강대국들과 함께 새롭게 국제 질서를 설계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선언했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 통합과 국력 결집으로 경제·안보 복합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재도약을 이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세계 최강 국가들의 패권 경쟁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가 생존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해 선진국의 대열에 자리 잡으려면 우리 스스로 강대국이 돼야 한다”며 “글로벌 질서를 재설계하는 국제사회 경쟁에 적극 참여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전체주의 국가를 추종하거나 배타적 국제 질서에 편입되면 패망의 길에 들어서게 될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국제 질서 재편 경쟁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우방 강국과 공조해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질서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외교를 할 때”라고 말했다.

-새 정부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선진국 면모를 되찾는 것이다. 타협과 자제, 존중과 신뢰를 통한 갈등 조정의 정치가 사라지고 무력과 법이 정치의 영역을 대체하고 있다. 통치의 소프트파워가 사라지고 밀어붙이는 하드파워만 보인다.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이 국가적 목표를 향해 설득과 타협을 하면서 같은 방향을 보고 뛰어야 하는데 국가적 목표는 보이지 않고 모두 자리와 이권을 둘러싼 진영 싸움에 빠져버렸다. 지도층부터 솔선수범의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가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무엇보다 ‘국가 목표’라는 거대 담론의 부활이 요구된다. 거대 담론이 억압적인 면이 있고, 또 그렇게 악용하는 정치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 목표가 사라지면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아무도 모르게 된다. 국가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부합하는 비전과 정책을 마련하고, 그에 맞는 전문가와 조직으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은 정치라는 예술로 풀어야 한다.

-국가 목표 설정의 출발점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이 처한 운명적 위치다. 우리나라는 통일을 달성해도, ‘기본사회’가 만들어져도 세계시장이 닫힐 경우 그 순간 패망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 세계가 자유롭고 개방된 시장 질서로 유지되는 것이다. 바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다. 한국과 같은 무역 국가는 국제시장과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국가 목표는 글로벌 질서가 자유롭고 개방된 시장 질서로 유지되도록 ‘국제사회에서의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강대국과 함께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 설계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같이 강대국이 되는 것이다.

-선진국을 넘어 강대국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강대국이 되기 위한 물리적 필요조건은 근대화와 민주화가 시대에 맞게 최고도로 이뤄지는 것이다. 근대화는 시장에서의 산업 경쟁력과 글로벌 대기업, 기술력, 인적 자원, 그리고 그에 맞는 국가 및 기업의 제도 등을 갖추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하드웨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강대국의 충분조건인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는 한마디로 ‘국제 질서 설계력’이다. 국가의 조직과 인적 자원, 글로벌 대기업 등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설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향후 5년 세계 질서 급변 과정에서 국제 질서 설계력이 없으면 우리는 다른 나라의 설계에 국가의 운명을 맡기게 된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국제 질서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설계력을 가져야 한다. 강대국 소프트웨어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한국의 미래 산업과 경제에 먹구름이 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주변 강국 패권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여러 도전 과제들을 안고 있다.

△한국은 대륙으로 향하는 길이 막힌 일종의 섬이며 해양 무역 국가다. 가까운 미래에 대륙으로 가는 길이 열릴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중국이라는 위협적인 국가를 상대해야 한다. 중국은 개방된 시장 국가가 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유리한 경제구조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은 일본과 협력하면서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질서 유지와 재편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질서를 택해야 한다.

-중국의 공급망과 수출 비중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국제 질서 선택 과정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과 미래 산업 육성이다. 중국은 우리가 공급망을 구조적으로 의존하기에는 리스크가 큰 나라다. 미래 산업을 위해서는 소비가 큰 미국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반도체·조선·자동차·로봇·방위산업 등 당장 눈에 띄는 산업만이 아니라 인공지능(AI), 문화 산업, 바이오, 플랫폼 인프라, 우리의 인적 자원 등을 활용해 미국이 구축하는 플랫폼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운명은 한반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시장에서 결정되므로 우리의 군사력은 국제 질서에 기여해야 한다. 한미 동맹도 한반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 안정과 억지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위협이든 중국의 위협이든 그에 대한 억지와 지역 안정을 위해 기여해야 하고 그 길이 어떤 전략인지 모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다 올려놓고 고려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는 군사력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억지력이 약화된다.

-남북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새 정부는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억지력 강화와 상호 자극의 자제를 통해 달성해야 한다. 핵무장 이슈가 뜨거운데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은 어느 핵국가가 핵을 전술적으로 이미 사용했거나 사용에 임박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다. 지금 바로 핵무장을 하는 것은 경제적·외교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고 기회 비용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핵카드는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카드에 대한 미국의 존중을 얻어내야 한다. 우리가 먼저 핵카드를 스스로 무장 해제하면 억지력에 큰 손상이 온다. 지금은 핵을 가진 강대국이 아니라 핵카드를 가진 강대국이 돼야 한다.

-한일 관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화가 컸다.

△한일 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진화해야 한다. 세계가 이미 자유롭고 개방된 질서로 바뀌었기 때문에 19세기 민족주의가 설 자리는 일본에도 없고, 우리에게도 없다. 무조건 친일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과거사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일본의 자유주의 세력과 함께 같이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훨씬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일이다.

-젊은 세대의 사회 변화 갈망이 강하다.

△미래를 위해서는 정치에서 혁신가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 지금은 사회 대변혁이 이뤄지는 시기다. 대변혁은 역사상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이어 지금이 두 번째이다. 미래 비전을 보여주고 비전이 이뤄져 나에게 이익이 되는 현실을 실제로 보여줘야 한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등 미국의 혁신가는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발휘했다. 혁신가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아는 사람이 리드해야 한다.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앞장서 이끌어나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태극기부대가 리드할 수 없다. AI를 써보지도 않은, 플랫폼의 생태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선진국·강대국의 리더가 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유례없는 분열과 혼란에 위기를 맞고 있다.

△지도자가 통합의 비전을 갖고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줘야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다. 근대적인 합리성과 과학, 법치, 민주주의, 보편 가치, 공공 영역과 사적 영역의 균형, 글로벌 마인드 등을 제대로 확립해야 한다. 있는 파이를 나눠 먹는 정치와 경제가 아니라 협력해 파이를 키우는 정치와 경제를 해야 한다.

-한국 경제에 신성장 동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은 제조업과 인적 자원에 강한 국가이며 우리 국민은 시장을 잘 읽어서 빨리 적응하는 민족이다. 그리고 세계시장이 열려 있지 않으면 바로 무너지는 나라다. 따라서 좁은 한반도나 동아시아가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 국민도 미래 지향적 인센티브 구조로 리드해야 한다. 미래 지향적 경제 리더십은 강대국과 함께 미래 시장과 미래 질서를 같이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고 진영 싸움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 비전으로 국가를 끌고 나가는 힘을 보여줘야 한다. 그 방향으로 국가 조직과 인사를 개편하고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강대국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는 강대국들과 함께 새롭게 국제 질서를 설계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He is…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신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미일 반도체 협정과 주권 정체성’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립외교원 교수를 거쳐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한반도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미래전략연구원 원장과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올 4월 출간한 ‘2030 대한민국 강대국 시나리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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