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합의’로 무역 휴전에 들어간 뒤에도 팽팽한 기싸움을 펼쳤던 미국과 중국 정상이 관세 전쟁 해소의 분수령이 될 전화 통화를 가졌다. 두 사람 간 공식 전화 통화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사흘 전인 올 1월 17일 이후 처음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날 저녁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날 통화가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성사됐음을 의미하는 ‘잉웨(應約)’라는 표현을 썼다. AP 통신도 “중국 외교부가 ‘두 정상이 통화를 시작했다’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취임한 이후 시 주석과 통화한 적이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지만 정확한 시점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인 1월 17일에만 시 주석과 통화했다고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번 통화에서 지난달 10~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합의한 관세 조치 이행에 관해 구체적인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해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달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 시 주석과 무역 협상에 관한 통화를 나눌 것으로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도 같은 날 CBS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통화하면 (무역 갈등이) 해결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대화를 시작하면서 두 정상이 이르면 이달 정상회담을 가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월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중국이 6월 미국에서 첫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WSJ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모두 6월생이라는 점을 들어 ‘생일 정상회담’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통화에 대해 “백악관은 논평 요청에 즉각 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전화 통화가 전격적으로 성사된 것은 양국 무역 갈등으로 두 나라 경제가 직격탄을 맞는 것은 물론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미국과 중국은 지난달 제네바에서 상호 관세율을 90일 간 115%포인트씩 내리기로 합의한 이후에도 곳곳에서 충돌했다. 미국은 합의 다음날인 13일 새 인공지능(AI) 칩 수출통제 지침을 발표한 데 이어 같은 달 23일 반도체설계자동화(EDA) 소프트웨어 판매 중단, 28일 유학생 비자 취소 등 대(對) 중국 압박 수위를 연일 높였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트루스소셜에서 중국의 희토류 7종 수출 통제 유지 조치를 겨냥해 “중국이 우리와의 합의를 완전히 위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마찰을 일으켜 무역 관계 불확정성 키웠다”며 맞받아쳤다. 중국 상무부 측은 “스스로 반성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되레 중국이 합의를 위반한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사실을 심각하게 벗어난 것이므로 중국은 단호히 거절한다”고 응수했다. 중국은 자국 기업 알리바바의 기술이 탑재된 미국 아이폰의 자국 출시도 늦추며 보복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금까지 300개가 넘는 인공지능(AI) 모델이 승인됐지만 애플은 유독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미중 갈등이 원인”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이날 미중 통화에서 미 정부의 중국 유학생 비자 취소 방침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8일 “중국 공산당과 관련 있거나 (안보 관련) 중요 분야에서 연구하는 이들을 포함해 중국 학생들의 비자를 공격적으로 취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37만여 명에 이르던 미국 내 중국 유학생 비율은 지난해 기준 27만 7000명으로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미국 내 전체 유학생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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