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스 심장’ ‘남자프로농구(KBL) 전설’ 양동근(44)의 사인에는 선수 시절 등번호인 ‘#6’과 이름이 쓰인다. 최근 그의 사인에 한 가지 달라진 점이 보인다. 이름 앞에 감독을 뜻하는 ‘H.C’(Head Coach·헤드코치)를 붙인 것. 양동근은 “꿈꿔왔던 순간이다. 유재학 감독님이 사인하실 때 어깨너머로 보면서 ‘와’하고 감탄했었는데 이제 저도 이름 앞에 ‘H.C’를 붙일 수 있어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달 13일 울산 현대모비스 제7대 사령탑에 선임된 양동근 감독을 최근 경기 용인의 현대모비스 연습체육관에서 만났다. “꿈꿔왔던 순간을 이루게 돼 믿기지 않을 만큼 기쁘고 행복하다”는 그는 “그렇다고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 프로농구 사령탑이 경험 쌓는 자리도 아니고 성적이 안 나오면 책임지는 자리지 않나”라고 말했다. “사실 무거운 책임감과 설레는 감정이 교차하는데 비시즌까지만 설레야 할 것 같아요.”
양 감독은 현대모비스에서만 21년을 보낸 ‘원클럽맨’이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입단한 뒤 2020년까지 17년 간 한 팀 유니폼만 입었다. 데뷔 첫해 신인상을 받은 그는 최우수선수(MVP) 수상도 정규 리그 4회, 챔피언결정전 3회에 이른다. 팀의 정규 리그·챔프전 6회 우승도 이끌었다. 등번호 6번은 영구결번이다. 2021년부터는 현대모비스에서 코치와 수석코치도 맡았다. 팬들이 그를 ‘모비스의 심장’이라 부르는 이유다.
양 감독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감독으로서 KBL 역대 최다인 724승을 쌓은 현대모비스 전 감독이자 현재 KBL 경기본부장인 유재학이다. 양 감독은 “제 프로농구 인생 전체를 유 감독님과 함께했다. 2004년 첫 만남에서 감독님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잔가지는 내가 쳐 줄게’라고 하셨는데 그때 그 말이 정말 큰 힘이 됐다”면서 “이번에 감독 선임된 이후에는 ‘축하한다. 너 이제 힘들겠다. 그래도 어떡하겠어. 열심히 해야지’라고 하셨다. 감독이 되고 나니까 유 감독님의 가르침이 더 생각난다”고 했다.
양 감독이 그리는 현대모비스에도 스승 유재학의 색이 더해질 전망이다. 양 감독은 “유 감독님께 배운 게 경기장 안에서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감추는 것이었다”며 “선수 구성에 따라 전술·전략은 바뀌겠지만 개개인의 장점을 찾아내 두드러지게 하고 단점은 숨기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어 “아직 우승을 논하기에는 성급한 것 같다. 우리 선수들이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다 치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다가올 시즌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현대모비스는 2024~2025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누구보다 화려했던 선수 시절을 거쳐 소망하던 현대모비스 사령탑까지 올랐지만 양 감독은 여전히 ‘성공’을 꿈꾼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휴대폰 화면에 적은 ‘나는 성공한다’는 문구를 지금까지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쓰고 있어요. 시기에 맞게 그때그때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씩 이뤄가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양 감독은 “선수들이 저와 호흡을 맞추면서 ‘내가 성장했구나’라고 느끼고 다른 팀에서 아무리 오라고 해도 ‘난 안 가’하는 믿음을 주는 감독이 되고 싶다. 제가 유재학 감독님한테서 느꼈던 것처럼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선수가 있다고 한다면 나름대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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