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클레(Paul Klee·1879~1940)는 그의 일기장에 열 살 때 처음 본 오페라인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1853년 초연)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다. 어린 소년은 오페라 속 깊은 절망에 빠진 여주인공 레오노라가 스스로 자신의 이를 뽑아내는 장면에 관한 인상을 적어두었다. 또한 학창 시절 수학 노트 한편에는 절규하는 듯한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1850년 초연)에서 살해의 누명을 쓴 여주인공이 신에게 운명을 맡기며 부르는 ‘엘사의 꿈’ 장면이다. 음악과는 뗄 수 없는 화가 클레는 그 후로 계속 오페라의 인상들을 자신만의 회화적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오르가니스트였던 증조부, 음악 교사였던 아버지,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로 인하여 클레는 음악과 함께 성장했다. 일곱 살 때부터 시작한 바이올린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 베른시립관현악단에서 특별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클레가 1898년부터 1918년까지 쓴 일기장은 마치 공연의 기록인양 음악회에서 보낸 저녁 시간들로 가득하다. 그 안에는 클레의 음악에 관한 단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인이 된 피아니스트 릴리 슈툼프(Lily Stumpf·1876~1946)도 베른의 한 음악회에서 만나 평생 함께 연주했고, 당대 음악가들인 부조니·힌데미트·스트라빈스키 등과도 활발히 교류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클레가 음악만큼이나 문학에도 관심이 컸다는 사실이다. 톨스토이·볼테르·괴테·발자크·셰익스피어·몰리에르·호프만 등 수많은 문학가들이 그의 일기장 다른 한편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실제로 클레는 시를 짓고 글을 썼다.
재능이 많았던 클레가 진로를 고민했던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는 열아홉 살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음악은 마법에 걸린 사랑. 화가로서의 명성? 현대의 시인? 답을 못 찾고 어정거림.’ 결국 클레는 화가의 길을 가게 되었지만 늘 음악과 문학이 함께했다.
이제 그가 오페라에 심취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오페라는 노래와 음악, 문학과 시, 연극과 무용, 그리고 미술까지 무대에서 어우러지는 종합적인 예술이다. 또한 연출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어 끝없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클레는 고전부터 현대까지 거의 모든 오페라를 섭렵했다. 글루크, 모차르트, 베토벤, 베르디, 오펜바흐, 푸치니, 비제, 드뷔시, 바그너, 슈트라우스 등의 수많은 오페라는 클레의 내면으로 침투하며 창작의 모티브가 되었다.
모차르트를 특히 좋아했던 클레는 그의 오페라를 종종 작품에 등장시켰다. ‘돈 조반니’(Don Giovanni·1787년 초연)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 ‘바이에른인 돈 조반니’(1919)에는 클레 특유의 상징을 통한 표현이 유머러스하다. 이 작품은 바람둥이 돈 조반니의 하인 레포렐로가 주인의 연애사건 목록 2,065건을 낭독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사다리에 오르는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다섯 명의 이름은 당대 소프라노 두 명, 화가와 로맨틱한 관계였던 세 명의 모델들로 삶과 오페라의 서사적 연상이 화면 속으로 함께 녹아 들었다.
슈트라우스가 모차르트를 오마주한 오페라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1911년 초연)와 연관된 작품을 감상해 보자. ‘가수 로사 실버의 보컬 패브릭’(1922)은 클레의 텍스트 작업 선상에 있으며 음표와도 같은 문자들을 통해 작품에 리듬을 부여하고 있다. 알파벳 ‘R’과 ‘S’는 오페라에서 사랑의 징표가 되는 ‘은장미(로사 실버)’ 혹은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이니셜이기도 하여 유희적이며 다섯개의 모음은 음률처럼 부유한다. 클레는 은빛 색채와 패브릭이 겹쳐진 듯한 질감으로 마치 은은하고 몽환적인 음색으로 짜여진 직물처럼, 슈트라우스 특유의 오케스트레이션이 담긴 분위기를 발현해 낸다.
클레는 오페라를 통하여 형식과 내용을 조합하는 방식을 탐구해 나아갔다. 특히 오페라적 모티브에서 기인한 선으로 사색하려는 시도들이 적잖이 드러난다. 우선 클레의 드로잉 ‘발키리’(1940)는 바그너 ‘반지’시리즈 중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1876년 초연)에서 신성을 빼앗긴 북유럽 신화의 여전사 발키리 브룬힐데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말년의 클레가 투병하며 죽음을 앞두고 그렸던 천사 드로잉 중 한점으로 삶과 죽음, 인간의 사랑 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투영했다.
또한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1902년 초연)도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멜리장드가 긴 머리카락을 탑 아래로 늘어뜨리고 그 아래에 있던 펠레아스가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드로잉 ‘긴 머리와 충만한 영혼’(1929)을 그렸다. 드뷔시의 변화로운 리듬을 시각화한 클레의 평행선 작업은 그 이후에도 지속된다.
세밀하게 그린 작품 ‘오르페오의 정원’(1926)은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1762년 초연)를 향한다. 이는 오르페오가 지하세계에서 에우리디체를 찾아 지상을 향하는 장면을 위한 무대 연출이 되기에도 손색없는 작품이다. 이렇게 클레의 작품에 등장하는 오페라들을 관람하며 화가의 사유를 따라가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리라.
클레는 오페라처럼 다양한 분야를 포용했던, 화가이자 연주자였으며 교육자이고 이론가였다. 스위스 베른에는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파울클레센터(Zentrum Paul Klee)’가 초원 위에 음악처럼 흐르고 있으며,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클레는 고요히 잠들어 있다. 여느 미술관과는 달리 파울클레센터는 미술을 넘어 다양한 예술적 체험을 하도록 설립 취지를 드러내며 그 동기 부여를 위해 클레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새 시대의 새로운 예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라고 극찬했던 파울 클레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페라 속 고전을 탐닉하면서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가 되었다. 또한 미술에만 매몰되지 않았음에도 20세기 최고의 화가가 되었다.
▶▶필자 김보라는 성북구립미술관 관장이다. 서울시미술관협의회 회장이며 ICOM 한국위원회와 (재)내셔널트러스트의 이사이고, 서울시 박물관미술관 진흥정책 심의위원 등을 맡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했고, 경기도미술관에 근무하며 건립 TF 및 학예연구사로 일했다. 국내외 전시기획과 공립미술관 행정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다. 2009년 자치구 최초로 개관한 성북구립미술관의 학예실장을 거쳐 2012년부터 지금까지 관장을 맡고 있다. 윤중식·서세옥·송영수 등 지역 원로작가의 소장품을 확보해 문화예술 자산에 대한 연구 기반을 확장했고 예술가의 가옥 보존과 연구를 기반으로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을 개관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박물관 및 미술관 발전유공’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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