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억 원 미만의 공공 건축설계에 대해서도 심사위원 공개 시점을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심사위원 공개 제도를 악용해 설계업체 등이 각종 금품을 제공하는 등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이다.
29일 국토교통부와 건축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설계용역비 20억 원 미만의 공공건축 설계 공모에서도 심사위원회 위원 명단 검토 시점을 늦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앞서 2023년 4월 건축 공모 책임성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건축설계공모 운영지침 조항을 변경한 바 있다. 당시 설계비 추정가격이 20억 원 이상인 경우 심사위원 명단을 공모안 제출 마감일에 공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정부의 방침 변경 이후 강원도 신청사(146억 원), 전주 전시컨벤션센터(137억 원) 등 굵직한 공사는 공모안 제출 마감일에 심사위원을 공개해 왔다. 반면 설계비 20억 미만의 공공주택·공원 등 건립 사업은 건축설계 공모 시점에 맞춰 심사위원을 공개했다. 건축업체가 공모 이후 한 달 이상 심사위원 등의 성향을 파악해 설계할 시간적 여유를 준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공개 제도가 심사위원의 뇌물수수 등 불공정 행위로 변질하자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경남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기도의 한 설계업체 대표는 2021년 LH의 공공주택 설계와 관련 심사위원 5명에게 각각 500~1000만 원의 뇌물을 지급한 혐의로 최근 입건됐다. 경찰은 설계업체가 정부의 설계공모 운영지침 상 심사위원을 공개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에 공정성을 강화할 방안을 다각도로 살펴보기로 했다. 세계건축가연맹 등에서 심사위원회를 공개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만큼 비공개로 전환하기보다 심사위원 공개 시점을 늦추는 방안 등을 우선 검토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심사위원회 공개 시점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건축업계의 의견을 청취한 뒤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축업계 일각에선 민간설계처럼 심사위원회 비공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제기한다. 건축업계의 한 관계자는 “심사위원에 대한 사전접촉과 로비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명단을 비공개하는 방식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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