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항공기 부품과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등 핵심 기술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중국이 희토류 등 주요 광물 수출을 제한한 것에 대한 보복 성격이자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한 추가 압박으로 읽힌다. 미중 패권 경쟁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그림자 전쟁’도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미 상무부가 최근 중국에 대한 항공기 엔진, 반도체 설계에 필수적인 소프트웨어, 특수 화학물질과 기계류 등의 수출을 제한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 상업항공사(COMAC)의 중형 여객기 ‘C919’에 들어가는 미국산 부품 수출 허가가 일부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C919는 미국의 보잉 737, 유럽의 에어버스 A320과 경쟁하는 중국의 핵심 민항기로 미국 GE와 유럽산 부품 의존도가 높은 기종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고강도 조치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시놉시스·케이던스·지멘스 등 주요 전자설계자동화(EDA) 소프트웨어 업체들에 중국 수출 중단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EDA는 반도체 칩의 설계·시뮬레이션·검증에 필수적인 기술로 미국산 소프트웨어는 중국 시장에서 약 8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칩과 반도체 장비에 이어 소프트웨어까지 수출제한이 확대되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전방위적으로 차단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6일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정부가 ‘중국제조 2025’ 후속 전략으로 반도체 장비를 핵심 산업으로 삼고 있다고 보도했다.
잇따른 수출제한 조치의 배경에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4월부터 희토류 및 관련 자석류의 수출을 중단한 뒤 제네바합의 이후에도 “새로운 규제 체계를 마련 중”이라며 수출 허가를 일부만 재개한 상태다. 미국은 이를 ‘실질적 개방’과 거리가 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미국이 또다시 수출통제의 고삐를 죄고 있지만 중국은 유럽을 향한 ‘희토류 외교’로 반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중국 상무부는 27일 베이징에서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및 유럽 내 반도체 공급망 기업 40여 곳과 좌담회를 열고 희토류 수출 허가 절차를 공유하는 동시에 반도체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희토류를 지렛대로 유럽 기술 협력을 끌어내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반도체 자립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미국 수출 규제의 직격탄을 맞은 화웨이는 자회사 및 관련 기업들과 함께 핵심 소재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주하이지스 테크놀로지’는 광둥성 본사를 중심으로 일본·한국·대만 출신 인력을 대거 채용해 포토레지스트와 연마재 등 핵심 소재의 내재화를 추진 중이다. 이 회사는 화웨이 지원을 받는 반도체 장비 업체 ‘사이캐리어’ 대표가 운영하며 SMIC 등 중국 파운드리들과 협력해 화웨이 칩 생산을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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