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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유물 예산을 늘려야 하는 이유

장상훈 국립민속박물관장





정확히 79년 전인 1946년 4월 25일 서울 남산 기슭에 한국의 민속 문화를 소개하는 ‘국립민족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고고학 및 미술사 자료 중심의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접수해 발족한 국립박물관과 함께 한국의 기층 문화를 중심으로 독립국가의 문화 정체성을 모색하는 문화 기관이 해방 공간의 혼란 속에서 어렵사리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삶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일상에 깃든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는 일이 이렇게 시작됐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국립민족박물관은 활동을 접고 국립박물관에 통합됐지만 1966년 ‘한국민속관’이 서울 경복궁에 설립되면서 민속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는 일을 재개할 수 있었다.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으로 확대 개편을 거쳐 1979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면서 이 박물관은 급속한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져가는 전통 민속 문화의 맥을 잇는 동시에 현대인들의 생활 문화까지 기록하면서 한국인들의 문화 정체성을 살피고 지켜왔다.

2000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이 국립중앙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지방에 분관을 둘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각 지역에 민속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였다. 하지만 국립민속박물관의 지방 분관 설립은 현재까지도 실현되지 못했다. 지역마다 개성 있는 민속 문화를 담을 지역 박물관의 설립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 한국 2035’ 비전을 발표하면서 2031년까지 세종시로 이전 개관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수도권·영남권·호남권 지역 분관 설치 계획을 포함한 것은 그래서 반갑다.



가장 많은 외국 관광객이 찾는 수도권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민속 문화를 충실히 담는 민속박물관 분관을 둬 내외국인들의 관심과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세종시의 국립민속박물관 본관을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담는 세계민속박물관으로 마련할 수 있는 전망을 갖게 된 것이다. 이로써 앞서 2008년 문체부의 소속 기관 직제에서 규정한 대로 국립민속박물관이 ‘우리 민족과 세계 각국의 생활양식, 풍속 및 관습’ 관련 직무를 제대로 실천할 물리적인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국토의 균형 발전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실한 과제가 돼 있는 오늘날 국립민속박물관은 대한민국의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장차 중남부권 지역의 핵심 문화 기관으로서 전국의 민속 및 생활사 박물관들을 이끌어야 한다. 또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운영 중인 세계문화박물관을 마침내 세종시에 구축해 수도권은 물론 전국에서 찾고 싶어 하는 문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글로벌 문화 강국의 꿈을 실현할 한국의 미래 세대는 이곳에서 지역 문화의 다양성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세계인들과 소통할 소양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처럼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깊은 이해와 도움이 필요하다. 세계적 수준의 박물관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조사와 연구, 수집과 전시, 학습 기회 제공 등 박물관의 핵심 업무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박물관을 운영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유물의 확보다.

박물관의 미래는 유물 확보 계획이 결정한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이 막대한 예산을 유물 구입에 쓰는 이유다. 아무리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본들 박물관의 운영 이유를 증명할 전시품이 적다면 허사다. 우리 몸집에 맞는 큰 꿈을 꿀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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