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돌풍에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이 분기 사상 처음으로 1000억 원 시대를 열었다. 위고비는 지난해 10월 국내 출시 이후 기존 강자인 ‘삭센다’를 밀어내고 부동의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경쟁사인 미국 일라이릴리 ‘마운자로’가 국내에 출시될 경우 다시 시장 판도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해외에서는 마운자로가 더 뛰어난 효과를 앞세워 위고비를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운자로는 2023년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고 지난해 7월에는 비만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대했다. 전세계적인 품절 사태로 아직 국내 출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연내 공급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6일 한국아이큐비아 따르면 올 1분기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는 108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03억 원보다 169.8% 성장했다.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이 분기 기준 1000억 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출시 이전부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해외 유명인의 체중 감량 비결로 입소문을 탄 위고비 판매가 급증한 영향이 컸다. 위고비는 올 1분기 매출 794억 원을 기록했다. 시장 점유율은 73.1%로 압도적이었다. 출시 첫 분기인 지난해 4분기 64.3%보다 8.8%포인트 증가했다. 위고비는 국내 발매 6개월 만에 누적 매출 1398억 원을 기록했다.
위고비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 치료제다. 췌장에서 인슐린 방출을 증가시키고, 식욕를 일으키는 뇌 수용체를 표적으로 삼아 환자의 식욕을 억제한다. 국내에서는 2023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를 받고 지난해 10월부터 출시됐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제로 고가(1펜 기준 42만~80만원)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체중 감량 효과로 품귀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위고비가 맹위를 떨치면서 기존에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을 주도하던 노보 노디스크 ‘삭센다’와 알보젠코리아 ‘큐시미아’의 매출은 감소세가 뚜렷하다. 삭센다의 올 1분기 매출은 4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40억 원 보다 70% 급감했다. 올 1분기 시장 점유율은 3.8%에 불과했다. 2018년 국내 발매된 삭센다 역시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로 2023년에는 시장 점유율이 36%에 달했다. 위고비 출시 이후 국내 공급이 줄면서 생산 중단설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큐시미아의 올 1분기 매출은 8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3.9% 감소했고 시장점유율은 7.91%를 기록했다. 큐미시아는 알보젠코리아가 미국 비버스에서 국내 판권을 확보해 2019년 말부터 종근당과 공동 판매하고 있다. 큐미시아 역시 지난해 3분기 매출 102억 원에서 4분기 93억 원으로 감소세다.
현재는 위고비의 독주 체제가 굳건하지만 경쟁 제품인 마운자로가 국내에 출시될 경우 판도가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 양강 체제를 형성한 가운데 최근 마운자로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는 일라이릴리가 노보 노디스크를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다. 올 3월 기준 일라이일리의 북미 시장 점유율은 53.3%까지 증가한 반면 노보 노디스크는 46.1%까지 감소했다. 이에 노보 노디스크는 2017년부터 회사를 이끌어왔던 라스 프루에르가드 요르겐센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일라이릴리는 체중 감량 효과에서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위고비를 앞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라이릴리가 최근 유럽비만학회(ECO)와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발표한 임상 3b상 ‘SURMOUNT-5’ 결과 마운자로 투여군의 72주차 평균 체중 감소율은 20.2%, 위고비 투여군은 13.7%로 마운자로 투여군의 체중 감량 효과가 더 켰다. 두 약물의 안전성은 유사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반면 노보 노디스크측은 “연구에 사용된 두 약물의 용량이 다른 만큼 효능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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