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계기로 엔비디아·AMD 등 미국 빅테크(거대기술기업)들이 중동 시장에서 잇따라 대형 계약을 따내고 있다. ‘오일머니’를 노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와 인공지능(AI) 기술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중동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실질적인 ‘빅딜’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 첫날인 13일(현지 시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사우디 국부펀드가 지분을 보유한 AI 기업 휴메인과 AI 칩 ‘GB300 블랙웰’ 1만 8000개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칩 한 개당 가격이 4만 달러(약 5666만 원)로 추정되는 만큼 단일 계약 규모만 총 1조 2000억 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따른다.
황 CEO는 “AI는 막대한 전력을 요구하며 사우디처럼 에너지자원이 풍부한 국가는 엔비디아의 기술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타레크 아민 휴메인 CEO는 “2030년까지 총 1.9GW(기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라며 향후 5년간 수십만 개의 엔비디아 첨단 칩이 추가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CNBC는 “AI 칩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엔비디아 반도체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전략 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웨드부시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미중 관세전쟁 ‘휴전’의 승자로 엔비디아를 꼽으면서 “뜨거운 AI 투자 수요를 타고 엔비디아에 꿈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AMD도 빅딜 대열에 합류했다. AMD는 미국과 사우디를 잇는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AI 칩과 소프트웨어를 총 100억 달러(약 14조 원) 규모로 공급할 계획이다. 엔비디아와 AMD 모두 AI 가속기 시장의 새로운 수요처를 선점하려는 전략을 펴는 상황에서 미 행정부의 AI 칩 수출 규제 완화 조치로 해외로 확장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마존도 중동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마존은 휴메인과 함께 사우디에 총 50억 달러(약 7조 원)를 투입해 ‘AI 존(zone)’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해 사우디 정부 전용 ‘AI 에이전트 마켓플레이스’를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순방에 동행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스페이스X의 위성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사우디 내 항공기와 선박에 공급하는 데 필요한 정부 허가를 얻었다고 밝혔다. 중동 내 자율주행 로보택시와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도 확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머스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게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직접 시연했다며 “궁극적으로 수백억 대의 개인용 로봇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행선지인 아랍에미리트(UAE)에서도 ‘AI 빅딜’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UAE에 엔비디아 AI 칩 100만 개 수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간 50만 개씩 2027년까지 공급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20%는 UAE 기업 G42가 활용하고 나머지는 미국 기업들이 현지에 건설할 데이터센터에 투입될 예정이다. 오픈AI는 이번 순방 기간 내 UAE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diver@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