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철강업계가 2010년 이후 15년 만에 가장 적은 양의 쇳물을 생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들은 전세계적인 수요 침체와 중국산 저가 공세, 미국 관세 압박의 ‘삼중고’ 앞에 잇따라 공장을 폐쇄하고 설비 가동을 멈추는 등 생산 조절에 들어갔다.
8일 한국철강협회·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국내 조강 생산량은 1550만 톤으로 최근 4년 연속 감소했다. 1분기 조강 생산량이 1600만 톤 밑으로 떨어진 것은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1368만 톤)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조강 재고는 지난해 연말부터 계속 쌓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107만 톤이던 재고 규모는 올 해 1월 114만 톤, 2월 121만 톤으로 늘어났다. 그만큼 판매가 부진하다. 올 1~2월 조강의 내수 판매량은 19만 6500톤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29만 5600톤)과 비교해 33.5% 감소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국내 강재 수요의 마지노선으로 인식되던 5000만 톤(연간) 명목 소비가 작년 붕괴된 후 올해는 최저 수준에 달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2021년 연간 1100만 톤에 달했던 국내 철근 수요의 경우 지난해 780만 톤으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는 600만 톤 수준까지 가라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 여건 역시 좋지 않다. 미국이 3월 12일부터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그간 쿼터제 적용을 받던 국내 업체들 역시 관세를 부담하게 됐다. 고수익 시장인 미국의 관세 시행 첫 달인 3월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3억 4000만 달러(약 4740억 원)로 작년 동기 대비 19% 감소했다. 이에 더해 일본 등 주력 수출국 대부분이 시장 방어에 나서면서 수출 다각화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철강업계는 재고가 쌓이자 생산 조절에 나서고 있다. 현대제철(004020)은 4월 한 달간 인천공장 철근 설비를 폐쇄했다. 이달 역시 15일간 철근 생산라인 절반에 대한 보수 일정을 잡아 설비를 제대로 가동하는 날이 많지 않다. 포스코 역시 지난해 공장 2곳을 폐쇄한 후 감산을 통해 생산 비용을 절감했다.
조강을 가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제강사들도 공장 가동률을 60% 미만으로 떨어뜨리는 감산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동국제강(460860)은 올 초 철근 공장의 생산 및 출하 일정을 조정하고 야간 조업체제로 전환했다. 한국제강과 환영제강은 이달 공장 비가동일수를 15일로 확정했으며 야간 조업 등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다. 대한제강 역시 추가 출하 중단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철근 가격이 원가 수준에서 형성돼 팔수록 적자가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철강업계가 1분기 잇따라 악화된 실적을 내놓으면서 재무 악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대제철은 1분기 영업손실 190억 원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포스코는 비용 절감을 통해 영업이익 3460억 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7% 개선을 이루는 등 실적 방어에 성공했지만 업황에 따른 불확실성은 지속되고 있다.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미국 관세 대응을 위한 대규모 현지 투자 역시 추진하고 있어 재무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현대제철은 그룹 차원에서 미 루이지애나 일관제철소 건설에 58억 달러를 투입하며, 포스코 역시 전략적 투자자로서 수조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송동환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실적 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어질 경우 재무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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