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국민의힘의 분열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와의 단일화 데드라인을 대선 후보 등록 시한(5월 11일)으로 못 박자 김문수 후보는 당의 결정을 무력화하기 위한 ‘당무 우선권’ 카드를 꺼내 들고 법적 절차를 포함한 정면 대응에 나섰다. 두 후보도 이틀간 마주앉아 담판을 벌였지만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보수진영이 기대했던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는 이미 반감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金 “유령과 단일화가 민주주의냐” 지도부 제안 거부
김 후보는 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당 지도부를 향해 “본선 후보 등록도 하지 않겠다는 무소속 후보를 위해 저 김문수를 끌어내리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이 시간 이후 강제 후보 단일화라는 미명으로 정당한 대통령 후보인 저 김문수를 끌어내리려는 작업에서 손 떼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당헌 제74조의 당무 우선권을 발동한다”며 전날 지도부가 제시한 ‘11일 이전 단일화’ 로드맵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신 후보 검증을 위해 단일화 시점을 일주일 늦춰 14일 방송 토론, 15~16일 여론조사를 통해 진행하자고 역제안했다.
단일화 상대인 한 후보에 대한 불만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김 후보는 이날 관훈 토론회에서 “(한 후보는) 단일화가 돼서 본인에게 ‘꽃가마’를 태워주면 입당하겠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입당도, 후보 등록도 안 하겠다는 것”이라며 단일화 요구와 관련해 “무소속으로 등록도, 입당도 안 한다는 유령과 단일화하라는 게 올바른 정당 민주주의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함께 조직적인 ‘한덕수 차출론’이 진행되고 있다며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金·韓 2차 협상도 결렬…도돌이표 논쟁만 반복
두 후보는 이날 2차 회동에서도 단일화 시점·방식에 대한 뚜렷한 입장 차를 드러냈다. 한 후보는 “제발 ‘일주일 뒤 하자’는 이야기하지 마시고 당장 오늘 내일 결판을 내자”며 후보 등록 마감 전 단일화를 마무리 짓자고 요구했다. 이어 “김 후보가 ‘단일화를 1주일 연기하자’고 하는데 결국 하기 싫다는 것”이라며 “단일화를 22번 약속했다. 오늘내일 결정해달라”고 압박했다. 반면 김
후보는 “난데없이 나타나 11일까지 (단일화) 경선을 완료하자고 한다”며 “청구서를 내밀면 문제가 있다”고 맞섰다. “한 후보가 출마를 결심했다면 당연히 입당하는 게 합당할 텐데 왜 아직 밖에 계시냐”며 후보 자격을 문제 삼기도 했다.
한 후보는 또 “(단일화를) 제대로 못 해내면 김 후보나 저나 속된 말로 ‘바로 가버린다’”고 위기감을 자극했다. 이에 김 후보는 “이재명의 독재를 막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것은 제가 늘 해온 이야기”라면서도 “선거운동도 안 하겠다는 것은 자리를 내어놓으라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서로 일주일간 선거운동에 돌입한 뒤 단일화를 하자고 거듭 제안했다. 결국 생중계 형식으로 진행된 회동에서 두 후보는 1시간 넘게 성과 없는 도돌이표 논쟁만 벌였다.
金 “법적 대응” vs 지도부 “예정된 단일화 진행”
김 후보 측은 지도부의 단일화 강행 추진에 맞서 법적 대응에도 나섰다. 김 후보는 이날 서울남부지법에 ‘대통령후보자 지위 인정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자신에게 당무 우선권이 있다는 점을 법적으로 확인받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 후보를 지지하는 원외 당협위원장들도 당이 소집한 전국위원회·전당대회의 개최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 금명간 법원 판단이 나올 예정이다.
당 지도부는 김 후보의 일방 통보에 거세게 반발하며 TV토론과 여론조사 등 예정된 단일화 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단일 후보 선호도 조사는 이날부터 이틀간 진행된다. 당은 9일 마무리된 조사 결과를 토대로 김 후보에 대한 단일화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단일화 불발 시 당 차원의 후보 등록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나돈다.
김 후보를 향한 지도부의 공세도 이어졌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단일화는 김 후보의 약속”이라며 “약속이 바뀌면 정치의 신뢰도, 지도자의 명예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단일화하라는 당원들의 명령을 무시한 채 알량한 대통령 후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회견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분이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왔던 민주화 투사인지, 중견 정치인인지 의심이 들었다”며 “정말 한심한 모습”이라고 직격했다. 국민의힘 의원 30여 명도 이날 두 후보의 회동 장소인 국회 사랑재에서 ‘인간 띠’를 두르며 단일화를 압박했고 김무성·유준상 등 당 상임고문들도 단식 농성을 갖고 “밤을 새서라도 단일화를 합의하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후보 입장에서는 11일까지 버티면 되고 법적으로도 유리한 고지에 있다”며 “지도부가 추진하는 단일화 로드맵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제적 단일화로 분열 자초” 지도부 책임론
당 안팎에서는 지도부와 대선 후보 간 충돌이 이어지자 “안 하느니만 못한 단일화”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특히 시간에 쫓겨 단일화를 밀어붙인 지도부의 서투른 대응이 분열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윤상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당 지도부의 강제적 단일화는 절차의 정당성 원칙과 당내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한마디로 이기는 단일화가 아니라 지는 단일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나경원 의원도 “후보 강제 교체, 강제 단일화는 정당민주주의 위배, 위헌·위법적 만행으로 더 큰 혼란과 파괴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제라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 후보는 9일 진행하기로 했던 대구·부산 방문 일정을 전날 밤 돌연 취소했다. 당이 단일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한 후보와 막판 단일화 협상을 염두에 둔 결정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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