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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삼나무 일본 섬에 상륙한 현대차 [임병식의 일본, 일본인 이야기]

임병식 국립군산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수 천 년 된 삼나무와 이끼 숲으로 유명한 야쿠시마는 일본 최초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해바라기 꽃으로 뒤덮인 야쿠시마 풍경. 사진=김정훈 현대차 상무




‘현대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야쿠시마(屋久島) 달린다’

얼마 전 ‘서울경제신문’과 ‘연합뉴스’에 실린 흥미로운 기사 제목이다. 요지는 현대차에서 생산한 전기 버스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야쿠시마 섬을 운행한다는 것이다. 최근 장재훈 부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임원들은 야쿠시마를 방문해 무공해 전기 버스 5대를 인도했다. 고작 5대를 팔기 위해 그들이 먼 길을 간 이유가 궁금했다. 동행한 김정훈 상무(상용 품질담당)는 “‘바다 위 알프스’로 불리는 청정한 야쿠시마에 현대차가 달린다는 것은 전기 버스 강자로서 경쟁 우위를 선점하는 한편 일본 시장에서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듣고 보니 현대차의 야쿠시마 진출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야쿠시마와 인접한 다네가시마(種子島)에 관심이 끌렸다. 두 곳은 가고시마를 갈 때마다 마음에 둔 섬이다. 섬 전체가 세계자연유산인 야쿠시마는 1993년 유네스코에 등재됐는데 일본 최초였다. 유네스코가 야쿠시마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때 묻지 않은 원시림에다 신령스러운 삼나무 때문이다. 제주도 4분의 1 크기인 이곳에는 1000년을 넘긴 삼나무가 즐비하다. 특히 수령 7000년으로 추정되는 조몬스기는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일본에서만 관람객 1,300만 명을 기록한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에도 나오는 조몬스기와 이끼 숲은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원령공주’는 환경파괴의 위험을 그린 수작으로 야쿠시마에 친환경 버스가 필요한 이유다.

영화를 제작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은 챗GPT가 그리는 지브리 풍 만화의 원조인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야오 감독은 오랫동안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해 왔는데 ‘원령공주’ 외에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벼랑 위의 포뇨’ 등으로 인간의 탐욕과 무분별한 개발을 경고해 왔다. 지난해 다녀온 히로시마 현 토모노우라(鞆の浦) 역시 감독이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소재로 삼은 작은 어촌 마을이다. 하야오는 훼손 위기에 처한 토모노우라를 배경으로 ‘벼랑 위의 포뇨’를 제작했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히로시마 지방법원은 도로 건설계획을 중지했다. 토모노우라가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게 된 것은 하야오 감독 덕분이다.

현대차 장재훈 부회장과 이와사키그룹의 이와사키 요시타로 대표 등이 4월 21일 일본 야쿠시마 현지에서 ‘현대 전기 버스 인도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정훈 현대차 상무


야쿠시마로 가는 길은 간단치 않다. 후쿠오카 또는 가고시마 공항으로 이동한 뒤 다시 쾌속선을 타고 2시간을 달려야 한다. 탐방객들이 원행을 마다하지 않는 건 독특한 식생을 보기 위해서다. 야쿠시마는 아열대 기후부터 설산까지 보기 드문 섬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2,500~1만mm로 ‘한 달에 35일 비가 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짙은 이끼가 섬을 뒤덮고 수 천 년 된 삼나무 숲을 형성했다. ‘원령공주’에 등장하는 이끼 숲길은 탐방객들에게 최고 코스다. 탐방객들은 원시림과 이끼 숲을 헤치며 섬의 주인은 숲이고, 인간은 손님에 불과함을 깨닫고 돌아간다.

지척에 있는 다네가시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다네가시마는 일본에 처음 화승총이 전해진 곳으로, 과장되게 말하자면 근대 일본의 시발점이다. 1543년 9월 23일 다네가시마에 상륙한 포르투갈 상인 100여 명은 훗날 전쟁 판도를 바꾼 화승총을 에도막부에 전했다. 다네가시마 도주 도키타카는 이들로부터 2000냥을 주고 화승총 두 자루를 구입했다. 오늘 날 수 억 원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액수도 놀랍지만 당시 도키타카는 15살에 불과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화승총이 지닌 위력을 간파한 것이다. 도키타카는 화승총을 철포(鐵砲·뎃포)로 개량했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철포를 실전에 투입해 천하를 통일했다. 이후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은 조선을 유린하고 근대 일본으로 가는 종자돈을 마련했다.



다네가시마에 포르투갈 상인이 상륙한 뒤, 임진왜란까지 걸린 시간은 49년에 불과했다. 그동안 조선도 화승총을 받아들일 기회가 있었지만 조선 지식인들은 변화에 둔감했다. 1653년 또 한 차례 기회가 왔지만 역시 흘려보냈다. 그해 제주에 표류한 하멜을 비롯한 네덜란드 상인 38명은 조선에 13년 동안 머물렀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그들을 전국에 분산한 채 구경거리로만 소비했다. 앞선 문물을 받아들일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일본의 실용주의와 조선의 탁상공론은 훗날 지배와 피지배라는 치욕스러운 역사로 귀결됐다. 정치하는 이들의 책임이 그때나 지금이나 가볍지 않은 이유다.

전국시대 뎃포(鐵砲)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철포도 없이 싸우는 무모함을 빗댄 말이 ‘무대포(無鐵砲)’다. 조선은 한동안 정신 승리에만 골몰한 중국 소설속의 아Q처럼 무댓포 시대를 지냈다. 도요타 자동차는 글로벌 메이커 1위다. 현대 전기 버스가 일본에 상륙한 건 뎃포로 무장한 실력 덕분이다.

일본 최초 화승총을 받아들인 다네가시마, 일본 첫 세계유산 야쿠시마에 현대 전기차의 첫 상륙은 의미 있다. 우리나라 전기 버스가 일본 열도를 뒤덮는 날이 온다면 반도체에 이은 기술의 승리일 것이다. 역사는 반복한다는데, 이번에는 어떤 형태로 변주될지 궁금하다. 조만간 두 섬에 다녀오고 싶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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