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판단하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가 백현동 용도 변경을 협박했다’는 이 후보의 발언 모두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이날 “두 발언 모두 선거인의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것으로, 객관적으로 허위이고 고의도 인정된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이번 판결로 이 후보는 다시 고법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쟁점이 된 첫 번째 발언은 2021년 TV 토론에서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골프를 쳤다는 의혹에 대해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로 한 발언이다. 대법원은 이를 두고 “일반 유권자들이 ‘김문기와 해외 출장 중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인식하게 할 허위 사실”이라며 “이 후보가 김 전 처장을 인식하고 있었던 정황이 충분하다”고 봤다.
두 번째 발언은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의 “국토부가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을 압박했다”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성남시는 자체 판단에 따라 용도 변경을 추진했으며 국토부의 협박은 없었다”며 이 발언 역시 명백히 허위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3월 28일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지 단 34일 만에 결론이 났다. 대선 후보 등록 마감 전 판결을 내리기 위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대법원은 유력 대권 주자인 이 후보의 피선거권 여부가 달려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례적으로 빠르게 사건을 심리했다.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지난달 22일과 24일 두 차례 대법관 합의기일을 연 뒤 결론을 내렸다. 파기환송심 선고가 대선 전에 나올 가능성은 낮아 이 후보는 피선거권을 유지한 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다만 이후 재판 결과에 따라 후보 자격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날 벌집을 쑤셔놓은 듯 어수선했다.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대책 마련을 논의하는 등 시종일관 분주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지 9일 만에 단 두번의 심리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했다는 점에서 서영교 의원은 “6만 쪽이 넘는 재판 기록을 보기는 했는지 의문”이라고 쏘아붙였다. 판사 출신 변호사도 “대법원이 파기환송 사건을 이렇게 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기록을 제대로 볼 시간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최종 법원인 대법원이 대선의 불확실성을 제거 한 게 아니라 대선에 직접 참전해 버린 셈이 됐다. 이날 서울 종로의 한 포장마차에서 열린 ‘배달·택배 노동자’ 간담회에 참석해 파기환송 소식을 뒤늦게 접한 이 후보는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이라며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주도한 재판장은 조희대 대법원장이다. 조 대법원장은 2023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 지명·임명으로 대법원장에 취임했다. 2014~2020년 대법관에 재직하면서 다수 의견과 다르면서도 법리에 벗어나지 않는 견해를 내 ‘미스터 소수의견’이라는 별칭이 있다.
대법, 이재명 2심 뒤집었다..대선 정국 요동
‘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어대명)’ 구도에 균열이 생겼다.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사법 리스크를 털어버릴 것으로 기대했던 이 후보는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더구나 서울고법은 대법원의 판단 취지에 기속되므로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 2심에서는 추가 양형심리를 거쳐 형량은 새로 결정될 예정이다.
유죄로 파기환송된 만큼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후보를 향해 ‘정치적 사망선고’ ‘정계은퇴’ 등 원색적 비난을 쏟아부었고 민주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열어 대책을 숙의했다. 무죄 취지의 대법원 선고를 받고 “죽다 살아났다”는 소감을 밝혔던 경기도지사 시절과 달리 이 후보의 대선 가도에 짙은 안개가 끼고 있다. 어대명 구도가 ‘위태로운 대선 후보 이재명(위대명)’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양상이다.
이 후보는 이날 서울 종로의 한 포장마차에서 ‘배달·택배 노동자’ 간담회에 참석해 파기환송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인데 일단 내용을 확인해보겠다”며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 후보는 “중요한 건 법도 국민의 합의”라며 “국민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적 경쟁자들 입장에서는 온갖 상상과 기대를 하겠지만 정치는 결국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뜻을 따라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높은 지지율의 대세론을 믿고 대선 완주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이 후보는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부동의 1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여론조사마다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달 28~30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이날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이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적합하다는 응답은 전주보다 1%포인트 올라 42%로 조사됐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올해 들어 최고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13%), 한동훈(9%)·김문수(6%) 국민의힘 예비 후보를 합쳐도 이 후보 지지율의 반토막 수준이었다. 해당 조사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고,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재명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대선 완주 의지 확인
문제는 앞으로 지지율 변화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관건은 앞으로 대국민 지지율”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대통령에 적합하지 않은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을 경우 지지율 하락을 피할 수 없다. 지지율이 빠지기 시작하면 강하게 결속한 당심이 느슨해질 수 있는 점도 부담이다.
서울고법 역시 대법원과 같이 선고 속도전에 돌입해 대선 전에 선고를 내리는 상황도 변수가 된다. 대선 전 선고가 나올 경우 상황은 더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높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확정받으면 당사자는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경선을 마친 민주당은 이 후보를 대신할 후보를 낼 수조차 없어 원내 최대 정당이면서도 대선에 후보를 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틈새를 두고 다양한 정치공학적 셈법이 분출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반명 빅텐트’도 힘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규정 고려대 연구교수는 “2007년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관련 기소 여부 논란으로 사법 리스크가 점증하자 이회창 후보가 보수의 대안 후보로 출마했던 방식이 부각될 수 있다”며 “이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 대안 찾기에 나설 공간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민주당은 “대세에 지장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날 긴급의원총회를 갖고 의원들마다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상태에서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불소추특권을 가진 재임 중 대통령에 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이 계속 심리할 수 있을지가 뜨거운 논란으로 남게 된다. 그만큼 이번 판결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이 후보를 두고두고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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