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 여파로 올 1분기 미국 경제가 3년 만에 역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불확실성에 직면한 미국 기업들이 올해 실적 전망을 줄줄이 철회할 정도로 경제 심리는 크게 악화하고 있다. 취임 100일 만에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받아든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여론의 비판 수위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관세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경제가 올해 여름부터 본격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상무부는 30일(현지 시간)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속보치)이 전 분기 대비 연율 -0.3%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미국이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던 2022년 1분기(-1.0%) 이후 3년 만이다. 동시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첫 분기 역성장이다. GDP 성장률이 1%를 밑돈 것도 2022년 2분기(0.3%)가 마지막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올 1분기 미국의 역대 최대 무역적자가 역성장의 주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3월 미국 상품무역 적자는 전월 대비 9.6% 증가한 1620억 달러(약 230조 2500억 원)로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 미국 기업들이 4월 초 예고됐던 상호관세를 피하기 위해 재고 확보 등에 나선 것이 대규모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실제로 3월 상품 수출액은 1.2%(1808억 달러) 늘어난 데 비해 수입액은 5% 증가한 3427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 기록을 세웠다. 상무부는 “1분기 실질 GDP 감소는 수입 증가, 소비 지출 감소, 정부 지출 감소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4월 민간 고용도 6만2000명 증가에 그치며 고용 시장이 냉각하는 게 아닌지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날 고용정보업체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은 4월 미국의 민간기업 고용이 전월 대비 6만 2000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전망치(14만 7000명)를 크게 밑도는 결과며 지난해 7월(4만 2000명 증가)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작은 증가 폭이다. 경제 불확실성이 이어지자 민간 부문부터 고용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블룸버그는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률이 다시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이날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GDP 보고서에 따르면 1분기 근원 개인소비지출(PCE)은 전 분기 대비 3.5% 증가했는데 이는 2024년 1분기(3.7%)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3월 PCE 가격지수는 전년 대비 2.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 전망치(2.2%)보다 소폭 높은 수치지만 2월(2.7%) 상승률보다는 물가 상승이 둔화된 것이다.
경제 심리는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미 경제 조사 단체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4월 소비자신뢰지수는 86.0에 그쳐 2020년 5월(85.9) 이후 약 5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소득·사업·노동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단기 전망을 반영한 ‘기대지수’ 역시 4월 54.4로 2011년 10월 이후 13년여 만에 가장 낮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전문가들은 (수입이 정상화되면) 2분기 GDP 성장률이 개선될 수 있다고 예상하지만, 물가 상승이 소비자 지출에 타격을 입히면서 올해 말 성장률이 다시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마이너스 성장했다는 소식에 "바이든 정부의 잔재물'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트럼프는 자신의 관세 정책을 옹호하면서 자신이 약속한 "호황이 나타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관세 정책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미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아폴로 글로벌매니지먼트는 최근 “(관세 충격에) 몇 주 내에 미국 가게들의 진열대가 텅 비고, 코로나19 때와 같은 물품 부족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며 “5월 말에서 6월 초에 운송업계와 소매업계 해고가 이뤄지고 올 여름 경기 침체가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무역 정책에 극심한 불확실성이 계속된다면 대규모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무역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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